Home >

벽 - 유문호

2006.04.25 17:59

윤성택 조회 수:1786 추천:219

<벽> / 유문호/ 《오늘의 문학》으로 등단


        

        어느날 인사동 일방통행 길에
        나, 체증처럼 얹혀 있었네
        오랫동안 만났고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그와 책갈피처럼 마주앉아 있었네

        그는 그대로 서른을 살았고
        나는 나대로 또 서른을 살았네

        우리들의 페이지는
        오랫동안 만났고 만나지 못했던
        그곳에서
        한 장도 넘겨지지 않았네


[감상]
운명이라는 책 한 권이 있습니다. 그 안 일생 어느 한 페이지가 넘겨졌거나, 다 넘겨지지 못한 인연으로 서로 마주하고 있습니다. 지금 페이지와 페이지는 서로 겹쳐지지 못하고, 이렇게 누군가에게 읽혀지고 있습니다. <그는 그대로 서른을 살았고/ 나는 나대로 또 서른을 살았네>에서 와닿은 느낌, 세월에 대한 애틋함이랄까요, 우리의 인연이 이제야 겹쳐져 온전히 목록으로 남겨질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이 숨 막히는 <벽>이라는 정적, 내가 누구인지 그가 누구인지 독해되는 순간에 이 시는 정지되어 있습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051 오래전에 잊은 이의 눈썹 - 허수경 [2] 2011.03.15 1809 146
1050 선풍기 - 조정 [1] 2005.01.25 1807 178
1049 민들레 - 이윤학 2001.06.13 1803 285
1048 제기동 블루스·1 - 강연호 [2] 2001.04.10 1800 283
1047 사랑에 대한 짤막한 질문 - 최금진 2001.12.03 1795 207
1046 아직은 꽃 피울 때 - 하정임 2004.08.19 1792 197
1045 못은 밤에 조금씩 깊어진다 - 김경주 [1] 2006.08.17 1791 196
1044 첫사랑 - 진은영 [2] 2001.09.11 1789 190
1043 겨울 모스크바 편지 - 김성대 [1] 2011.02.11 1787 128
» 벽 - 유문호 [1] 2006.04.25 1786 219
1041 가방, 혹은 여자 - 마경덕 [2] 2005.12.10 1785 217
1040 안녕 - 박상순 [4] 2007.06.20 1784 139
1039 이 골목의 저 끝 - 정은기 2009.04.09 1781 123
1038 나무에게 묻다 - 천서봉 2001.06.11 1781 327
1037 어느 날 문득 - 김규린 2001.08.14 1779 232
1036 저물어가는 강마을에서 - 문태준 [1] 2005.05.06 1777 221
1035 감나무가 있는 집 - 김창균 [2] 2005.09.28 1775 222
1034 사랑 - 김상미 2003.08.14 1772 161
1033 살아야 한다는 근사한 이유 - 여림 [1] 2003.11.24 1770 204
1032 흙의 건축 1 - 이향지 2015.05.11 1767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