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얼굴에 입술을 대다』 / 권혁웅 (1997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 《민음사》(2007)
청춘 3
심야의 고속버스는 운구 행렬이다 나란히 누운 이들이
몽유(夢遊)의 도로 위를 둥둥 떠다닌다 벗어 둔 신발에
고인 추깃물이 넘쳐 바닥에 흐른다 그 위를 지나가는 조
그만 호곡(號哭)들,
뒷머리를 한 입씩 베어 먹힌 이들이
0시 20분의 터미널을 걸어 나오고 있다
누군가 그대의 생각을 조금, 아주 조금
덜어 간 것이다
[감상]
장례식에 다녀오는 심야버스쯤이었을까요. 누군가 세상을 떠나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 어쩌면 버스는 그 기억들로부터 다시 일상으로 운구 되는 행렬일지도 모릅니다. <청춘>은 누군가에서 누군가로 옮겨가는 열정이며 결핍의 시간들입니다. 자도 자도 관짝 같은 버스에서 뒷머리가 눌리고, 떠난 누군가는 당신이었다가 그였다가 그녀이기도 했을 심야버스에서의 생각들. 조금은 민망스럽게 뒷머리가 눌린 모습이 <생각을 조금, 아주 조금 덜어간 것>이라는 거. 뿔뿔이 흩어지는 뒷모습을 상상하면서 황황하게 멀어져간 누군가가 떠올려지는 건 왜일까요.
네가 만질 때마다 내 몸에선 회오리바람이 인다 온몸의 돌기들이 초여름 도움닫기 하는 담쟁이처럼 일제히 네게로 건너뛴다 내 손등에 돋은 엽맥(葉脈)은 구석구석을 훑는 네 손의 기억, 혹은 구불구불 흘러간 네 손의 사본이다 이 모래땅을 달구는 대류의 행로를 기록하느라 저 담쟁이에게서도 잎이 돋고 그늘이 번지고 또 잎이 지곤 하는 것이다
* 오래 전 도서관에서, 시집에서, 문예지에서, 시인들의 홈페이지에서 떠돌아다니며 적어두었던 몇 권의 다이어리 중에 그의 이름을 적었던 기억이 있어 찾아보았더니 권혁웅이 아니라 권대웅의 <겨울 양수리>네요. 형제일까요? 이름이 닮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