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태양의 계보 - 홍일표

2007.11.05 17:16

윤성택 조회 수:1128 추천:116

『살바도르 달리風의 낮달』 / 홍일표 (1988년 『심상』, 1992년 『경향신문』으로 등단) / 《시작》(2007)


        태양의 계보

        누가 하늘의 구름을 끌어다가 압정을 박는다
        신록의 혓바닥이 심장처럼 파닥이고,
        가파른 언덕 위 흰 광목으로 휘날리던 햇살들이
        빙판으로 얼어붙어
        눈 밝은 천사들이 엉덩방아를 찌며 넘어진다
        
        눈가에 맺히는 노래,
        마음 속 흐르는 음표들이
        콩콩 뛰며 나뭇가지 위를 오르내리는 저녁
        나무들 가슴 속에 불을 지피던 태양의 풀무질도 멎고
        딱딱하게 굳은 무덤의 엉덩이 밑에서
        노란 새싹들이 바동거린다
        
        온몸으로 거친 비탈을 받아 삼키며
        골고다 언덕을 오르던 한 사내

        그를 지상에서 떼어낸 하늘이 슬그머니 등을 돌린 사이
        눈썹에 젖어드는 노을
        붉은 포도주로 성배에 넘치고,
        먹장구름 틈새에서 발굴된 태양의 붉은 혓바닥이
        지상의 터진 살가죽을 천천히 핥는다        


[감상]  
선이 굵은 거시적 관점에서 <태양>이 그려집니다. 겨울에서 봄으로 들어서는 계절이었고, 먹구름 사이 햇살이 간간이 내비치는 오후에서 저물녘까지의 풍경입니다. 이 시의 매력은 서정의 맥락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드러내는 방식이 종교와 신화를 넘나드는 스펙트럼을 보여준다는 데 있습니다. <천사들이 엉덩방아를 찌며 넘어진다>의 예기치 않은 사건이나 <나무들 가슴 속에 불을 지피던 태양의 풀무질>처럼 대상에 대한 직관이 두꺼운 물감으로 덧칠하듯 강한 이미지로 중첩됩니다. 낯설어서 신선하다는 말, 이쯤의 작품을 두고 하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051 11월 - 이성복 2001.11.15 1448 212
1050 거미 - 박성우 2001.11.26 1314 209
1049 따뜻한 슬픔 - 홍성란 2001.11.27 1641 190
1048 시간들의 종말 - 김윤배 2001.11.28 1146 202
1047 파문 - 권혁웅 2001.11.29 1251 196
1046 정신병원으로부터 온 편지 - 유종인 2001.11.30 1224 201
1045 사랑에 대한 짤막한 질문 - 최금진 2001.12.03 1795 207
1044 지하역 - 이기와 2001.12.04 1194 208
1043 빈집 - 박진성 2001.12.05 2285 196
1042 수면의 경계 - 성향숙 2001.12.10 1198 190
1041 조용하고 시끄러운 화단 - 김애란 2001.12.11 1258 186
1040 적멸 - 김명인 2001.12.12 1222 192
1039 너무 아름다운 병 - 함성호 2001.12.19 1634 217
1038 고수부지 - 유현숙 2001.12.20 1487 205
1037 방문객 - 마종기 2001.12.28 1201 199
1036 마른 아구 - 김 경 2002.01.02 1149 213
1035 가문비냉장고 - 김중일 2002.01.08 1142 203
1034 이사 - 원동우 2002.01.10 1197 205
1033 토끼가 달에 간 날 - 윤이나 2002.01.11 1400 211
1032 요약 - 이갑수 2002.01.12 1231 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