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커」 / 김지녀 (2007년 『작가세계』로 등단) / 《문장웹진》 2007년 10월호
크래커
수백 개의 다이너마이트를 준비하고
폭파 전문가들은 콘크리트 벽에 뚫릴 구멍에 대해
토론을 시작했다
지구의 반대편에서
나는 그들과 함께 폭파 직전의 건물을 보고 있다
날씨는 쾌청하고
기온도 적당하다
크래커는 바삭바삭 잘도 부서진다
건물은 아직 그 모습 그대로 담담하게 서 있다
이미 깊고 큰 구멍의 뼈를 가지고
천천히 무너졌을 시간이 늙은 코끼리처럼
도시 한복판에 머물러 있다
까맣고 흰 얼굴들이 차례차례 지나간다
여러 번 크고 작은 눈빛이 오고 간다
벌컥벌컥 물 한 컵을 마시는 동안,
아무렇지 않게 무릎을 꿇어버린
벽과 창문과 바닥이
하늘 높이 솟았다 가볍게 흩어진다
방바닥에는 크래커 부스러기들이 잔뜩
떨어져 있다
저 먼지구름은 이제 곧 이곳을 통과할 것이고
[감상]
크래커에는 반드시 구멍이 있습니다. 과자를 구울 때 구멍이 없으면 크게 부풀기 때문입니다. 이 시는 크래커와 철거용 건물폭파를 절묘하게 중첩시켜 놓습니다. 건물에 대한 이와 같은 공법을 ‘발파해체공법’이라 하는데 분진이나 소음이 장기화되는 것을 방지하며, 건물 곳곳 뚫어놓은 구멍에 화약을 터트려 중력으로 붕괴시킵니다. 마찬가지로 크래커도 구멍이 없다면 잘 부서지지 않겠지요. 크래커를 조각낼 때 <벽과 창문과 바닥이/ 하늘 높이 솟았다 가볍게 흩어진다>는 것, 전혀 다른 두 소재를 하나의 틀에 잇대어 놓는 것만으로도 이 시는 시적 성취를 이룹니다. 대상에 대한 명징한 포착과 이미지화가 제대로 이뤄지면 첫째는 세련미가, 둘째는 탁 트인 감응이 읽는이의 시선을 통과합니다.
선생님들께서 원하시는 시쓰기가 뭔지 이제 좀 알 것 같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