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 송찬호 (1987년 『우리시대의 문학』으로 등단) / 《문예연구》 2007년 겨울호
사과
머리 위에서 터지던 사과탄은 붉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둥글고 주먹만한 회색빛 사과탄은 그 매운
최루가스만큼이나 붉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수원에 이르러, 우리는 쉬이 잊혀졌던
어떤 사소한 기억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것은 돌팔매처럼 먼 전선으로부터 날아왔다는 것
날아와선 꽃씨 주머니처럼 인정사정없이 터졌다는 것
예나 지금이나 세상은 아직 꽃밭이 아니어서 그걸 도로 집어 던지기도 했다는 것
과수원은 사과따기가 한창이었다 그 중 어떤 건
이 계절내내 가지에 매달려 있어야 하겠지만
우리는 발아래 사과 하나를 주워 들었다
대체 누가 이 사과의 핀을 뽑아 버렸을까
사과는 붉다 터질 것 만큼이나 붉다
[감상]
민주화운동으로 데모가 한창이었던 시절, 사과탄이라고 손으로 던질 수 있는 최루탄이 있었습니다. 총기에 넣어 발포하는 것이 아니라 수류탄처럼 안전핀을 뽑아 던지는 것이어서 그 뇌관 파편에 상처를 입은 사람도 많았다고 합니다. 이 시는 이러한 '사과탄'과 실제 '사과'를 관찰과 해석을 통해 깔끔한 통찰로 보여줍니다. 살벌한 데모 현장이 사과 과수원과 매치되면서 공간성이 겹쳐진다고 할까요. 꽃을 피우고 싹을 내고 열매를 맺는 사과나무의 부단한 생명력 또한 데모처럼 치열한 것이니까요. 그래서 '쉬이 잊혀졌던/ 어떤 사소한 기억'이 공유되는 지점이 비유의 발아입니다. 거기에서 '사과는 붉다 터질 것 만큼이나 붉다'라는 구체적 진술과 맞닥뜨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