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사과/ 손순미/ 1997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등단
적사과
남자는 빨갛게 구워진 사과를 팔고 있었다 사과는 남자의 직영농장에서 알
맞게 구워 온다고 하였다
남자의 농장은 거대한 아궁이 인 셈이다 그 아궁이 속에는 늘 다량의 햇빛과
투명한 공기가 불탄다고 하였다
나는 사과 한 상자을 주문 했다 남자는 사과 맛이 한 마디로 뜨겁다며 태양같
이 웃었다 배달된 사과를 보고 아이들은 불덩이 같다고 하였다
나는 사과껍질을 조심스럽게 깎았다 아무도 없었다 아이들은 사과 속에 들어
앉아 있다 나도 사과 속으로 들어 갔다 덜커덩 사과의 문이 닫히고 아무도 없
었다
사과향은 오래도록 이글거렸다 사과의 문이 열리고 아이들은 남자와 농장과
햇볕과 공기를 자꾸 분석하였다
[감상]
이 시는 사과가 단연코 구워진 것으로 비유해냅니다. 또한 농장은 햇볕과 공기로 불탄다고 합니다. 이 시를 읽으면서 우리가 거쳐온 인습에 의한 것들이 얼마나 상식의 테두리에 모든 것을 가두는지를, 놀랄 것도 없는 세상이 그간 얼마나 나를 유린해왔는지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처럼 다르게 보고 싶고 새롭게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