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골목/ 이병률/ 『시작』(2002.가을호)
밤 골목
쓰레기를 뒤지던 눈과 마주친 적이 있네
먹을 것을 찾느라 잔뜩 냄새를 묻힌 팔뚝이
비닐 안에서 멈추었으니
아뿔싸 그의 허기에 들킨 건 나라고
애써 웃으며 뒷걸음질쳤네
마주친 것이 살기로 부릅 떠진 눈이었나
사랑을 하던 눈과 마주쳤을 때도 그랬네
늦은 밤 이불을 털고 있는 내 방 창문을 지나
막다른 골목 어느 집 앞에
힘이 잔뜩 실린 구두를 벗어 놓던 한 그림자는
눈이 마주치자 욕정을 들킨 눈빛으로
달려들 것처럼 몸을 굽혔네
마주친 것이 내 그림자를 밟고 선 얼굴이었나
눈이 눈에게 말을 걸면 안 되는 심사인데도
자꾸 아는 체해야 할 일이 있는 사람처럼
내 눈은 오래도록 그 눈들을 잊지 못해 따라가고 있네
또 한번 세상에 신세를 지고야 말았다 싶게
쓰레기 자루를 뒤지던 눈과 마주친 적이 있네
[감상]
눈빛, 영혼의 어느 지점에서 검은 여백으로 비어져 나오는 그 눈빛. 누구나 다 한번쯤 느꼈을 것입니다. 이 시는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던 눈과 마주치게 합니다. 그러게 눈을 피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을, 지금에와 생각나게 합니다. 다시금 그 눈빛을 보기 위해 몇 천년을 지나왔을지도 모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