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질량」 / 이산 (2007년 『서울신문』신춘문예로 등단) / 《열린시학》2007년 겨울호
개인의 질량
필라멘트가 끊어진 전구를 잡고 있으니 이것이 투명한 공기의 무덤
이란 걸 알겠다 내벽엔 벽화를 채색하던 빛의 입자들 보이지 않고 계단
의 불도 손을 놓았다 그 위를 내 손이 몇 가닥으로 감싸고 있다
전구의 벽화를 가진 이 방은 또 한 무덤이어서 천장에 맺히는 환약 같
은 빗방울을 집어먹고 가벼운 졸음기가 쌓여갈 때쯤
불을 켠 채 잠이 드는 습관으로
나는 매일 밤 뒤척거리며 이 방에 벽화로 기록될 것이다
태양계를 벗어나는 운석의 마지막 눈짓과 제자리에서 말라가는 꽃의
색깔이 손바닥을 내려 방의 관성을 둥글게 다듬고 있었다
무리에서 떨어진 행성 하나가 굴러와 슬프지 않게 방을 밀어주었다
새 전구를 끼우고 나선 궤적을 따라 방을 조여 본다
처음 스위치를 누르는 손끝만으로 진공의 방안에 누군가 불을 피우
다 돌아본다
[감상]
건물이나 동굴, 무덤 따위의 벽에 그린 그림을 벽화라고 한다면 전구 하나로 그려진 공기의 무늬 또한 일종의 벽화이겠다 싶군요.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을 애써 깨버리고 그 빈 공간에 다른 상식으로 채워 넣는 걸 <지적인 비유>라고 해야 할까요. 불빛을 그려 넣는 방에서 착상된 이 <벽화>에 대한 상상력은, 전구에서 <빗방울>, <행성>으로 옮겨가며 둥근 이미지들을 두루 매만집니다. 이 시에서의 시간이란 <제자리에서 말라가는 꽃의 색깔>처럼 어떤 순간에 이르기 위한 빛의 항로입니다. 우주의 어느 궤도이든 관성은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돌도끼를 든 헝클어진 머리의 원시인이 일렁이는 모닥불에서 흠칫 뒤돌아보는 것도, 다만 빛의 내력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