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히지 않는 나비』/ 김상미/ 시작 시인선(근간)
사랑
그는 남쪽에 있다
남쪽 창을 열어놓고 있으면
그가 보인다
햇빛으로 꽉 찬 그가 보인다
나는 젖혀진다
남쪽으로 남쪽으로 젖혀진 내 목에서
붉은 꽃들이 피어난다
붉은 꽃들은 피어나면서 사방으로 퍼진다
그의 힘이다
그는 남쪽에 있다
그에게로 가는 수많은 작은 길들이
내 몸으로 들어온다
몸에 난 길을 닦는 건 사랑이다
붉은 꽃들이 그 길을 덮는다
새와 바람과 짐승들이 그 위를 지나다닌다
시작과 끝은 어디에도 없다
그는 남쪽에 있다
[감상]
햇볕 잘 드는 남쪽에 그를 세우고, 화자는 굴광성 식물처럼 그에게로 젖혀집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이처럼 상상력과 잇대어 하나의 풍경으로 만들어낸 점이 인상적입니다. 사랑이 무엇일까, 라고 질문해온다면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 것이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