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빈집 - 박진성

2001.12.05 11:27

윤성택 조회 수:2285 추천:196

『현대시』신인상 당선작 中/ 박진성 / 현대시


             빈집



  당신은 내게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의 음악 파일을
보내왔다 나는 비상구를  찾고 있었고  아득한 계단의  끄트머리쯤
당신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벼랑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측백나
무 한 그루가 늦겨울의 햇살을 찌르고 있었고 낡은 모니터가  나뭇
가지에 걸려 있었다 메일이  세 통 와 있었고 꿈결인 듯  잠결인 듯
당신의 머릿결이 만져졌다 나의 신경은 날카로워져서 마우스의 화
살처럼 뾰족한  측백나무 이파리를  자꾸만 떼어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부팅이 되지 않았다 죽은 歌手들이 살던 당신의 집은 검
은 비닐봉지 같은 모니터에 잠기고,  계단의 밑바닥으로  떨어지고
당신의 집에 더 이상 갈 수 없었다


  황사 무렵, 반지하 방 낮은 창으로 모래가 쓸려와 마우스가  서걱
거렸다 까끌까끌한 손으로 당신의 집을 찾아갔을 때  당신이 쓴 詩
라든가 음악 파일 몇 개가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었다  죽은 가수는
계속 노래하고 있었고 브룩클린으로  간 당신을 생각하자  나는 윈
도우 종료음처럼 쓸쓸해졌다 암호 같은 사랑, 내가 0이었을 때  당
신은 1이었을 뿐 그랬을 뿐



[감상]
컴퓨터가 일상화된 요즘, "암호 같은 사랑"에서 볼 수 있듯이 이메일과 사랑에 대한 쓸쓸함이 묻어납니다. 시도 진화하는 것이라면 이제 인터넷도 삶의 방식이며 또한 울림의 소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죽은 가수 김광석의 노래와 그녀의 홈페이지, 이메일 주소, 이진법의 기호들… 그것들이 하나의 쓸쓸함으로 종료되는 윈도우 종료음. 당신도 접속하고 있지 않나요?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051 11월 - 이성복 2001.11.15 1448 212
1050 거미 - 박성우 2001.11.26 1314 209
1049 따뜻한 슬픔 - 홍성란 2001.11.27 1641 190
1048 시간들의 종말 - 김윤배 2001.11.28 1146 202
1047 파문 - 권혁웅 2001.11.29 1251 196
1046 정신병원으로부터 온 편지 - 유종인 2001.11.30 1224 201
1045 사랑에 대한 짤막한 질문 - 최금진 2001.12.03 1795 207
1044 지하역 - 이기와 2001.12.04 1194 208
» 빈집 - 박진성 2001.12.05 2285 196
1042 수면의 경계 - 성향숙 2001.12.10 1198 190
1041 조용하고 시끄러운 화단 - 김애란 2001.12.11 1258 186
1040 적멸 - 김명인 2001.12.12 1222 192
1039 너무 아름다운 병 - 함성호 2001.12.19 1634 217
1038 고수부지 - 유현숙 2001.12.20 1487 205
1037 방문객 - 마종기 2001.12.28 1202 199
1036 마른 아구 - 김 경 2002.01.02 1149 213
1035 가문비냉장고 - 김중일 2002.01.08 1142 203
1034 이사 - 원동우 2002.01.10 1197 205
1033 토끼가 달에 간 날 - 윤이나 2002.01.11 1400 211
1032 요약 - 이갑수 2002.01.12 1231 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