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속의 빈 집』/ 김명인/ 미래사
적멸寂滅
한겨울 눈은 허벅지까지 쌓였다 인적 그친
방죽 너머로 바람 혼자서 달려가고
골짜기 새들조차 긴 꿈 속에 파묻힌
유난스런 날들은 길고 길었다
언 귀 비비면 열고 닫히는 소리 무섭게
부서지는 파도여, 버린 몸 또한
이제 돌볼 수 없는 때를 만나서
벼랑 끝 채석장 철탑 우뚝 솟은 언덕까지
절뚝거리며 생각 밀고 당기면서 가면
어디로 가야 하나 막막한 마음만큼 어지럽게
구름들 바다를 건너서 갔다
[감상]
참 서정적이지요. 이 시를 읽고 있노라면 한겨울의 눈과, 바람과 파도, 그리고 구름들이 눈에 선합니다. 또한 소재 하나 하나의 의인법이 인상적입니다. 이번 겨울, 언젠가 당신도 이 시에서처럼 겨울바다에 설 기회가 있겠지요. 저 또한 눈을 감고 이 기운을 간직하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