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 조말선 (1998년 『부산일보』, 『현대시학』으로 등단) / 《현대시학》 2007년 11월호
거기
모두가 술을 마시고 있을 때
정성스레 커피를 만들어 마시는 사람은 미쳤다
그런 사람이 떠난 곳은 아닐 것이다
어두운 창밖의 나뭇잎들이 혼란스레 안면을 뒤바꾸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나는 어둡고 저곳은 더 어둡다
나뭇잎의 익숙한 앞면보다 뒷면이 더 선명해진다
전화에다 대고 거기라고 했으니 사람이 무슨 장소도 아니고
졸지에 장소가 된 그는 우뚝 멈춘다
나뭇잎의 앞면과 뒷면처럼 여기와 거기는 한 몸이다
그래서 우리는 몹시 멀다
여기에 내가 있을 때 왜 나는 거기에 있고 싶을까
바람이 아무리 세게 불어도
나뭇잎의 앞면과 뒷면은 섞이지 않는다
내가 여기 있을 때 거기를 가질 수 있는 것은 흡족하다
다만 여기와 거기는 섞이지 않는 것이다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아득히 시점이 달라져 있다
커피 잔을 씻지도 않고
영정 속에 든 사람이 간 곳은 아닐 것이다
나는 여기 있어서 거기가 그립다
[감상]
‘저기요!’라고 식당에서 한 번 쯤은 불러 본적이 있을 것입니다. 나와 타인의 거리를 설명하는 이 말, 더 나아가 이 시의 <거기>는 장소이자 그리움의 대상이 됩니다. 나뭇잎의 앞면과 뒷면은 필시 존재하는 것이고, 여기와 거기 또한 분명 구분되는 시공간입니다. 그러나 이 시는 그 거리를 계측하는 것이 아니라, <한 몸>으로 감응되기를 원합니다. 누구는 술 때문에 세상을 뜨기도 하지만, 커피 잔을 씻지도 않고 갑작스레 세상을 뜬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세상이 불공평하다거나 공평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나는 여기 있어서 거기가 그립다>는 애잔함만이 이 시공간을 허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