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회심곡」 / 조현석 (1988년 『경향신문』으로 등단) / 《리토피아》 2007년 겨울호
늦가을 회심곡
가느다랗고 여린 늦가을 햇빛 아래
어스름 내리기 전 하늘 끝에
초점 흐린 시선을 두고
전동 휠체어에 앉은 귀머거리 할머니
그 곁에 구부정하게 선 늙수그레한 아들
듣는지 마는지
쉬지 않고 중얼중얼 똑같은 이야기
― 나이 들기 전 재웠어야 할 바람이야, 바람의 꼬리는 계속 자라는 것이야 빨리 끊었어야 해, 이리 뼛속까지 구멍 숭숭 나고 바람까지 들어 밤마다 눈 뜨고 잉잉거리는 걸
갑자기 더 흐리게 풀어지는 햇빛
붉디붉어지는 구름 한 점
서녘 산 끝에 걸리고
두 사람 곁 스쳐가는
천 년 전의 바람
귀 밑을 스쳐갈 때
어디선가 들리는
목탁소리에 얹혀진 회심곡
할머니 붉어진 눈에 눈물 떨어지고
― 나이 들기 전 재웠어야 할 거인데 바람의 꼬리는 꼬리를 물고 무는 게야, 지금도 늦지 않아 빨리 끊어, 이리 뼛속 구멍에 숭숭 들고나는 바람, 그 마음은 밤에도 자지 않는 걸
[감상]
깨달음은 매순간 찾아오기도 하고 너무 늦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깨달음의 과정에는 스스로 삶을 반추하면서 뉘우치고 또 그것을 극복하려는 자각이 뒤따릅니다. 한 생이 다 저물듯 저녁놀 지는 풍경에서 귀머거리 할머니와 늙수레한 아들의 모습이 잔잔합니다. 회심곡(回心曲)이 그야말로 착한 것을 권하려고 만든 노래이듯, <귀머거리 할머니>의 중얼거림은 그 자체로 운율과 리듬을 가지며 하나의 노래가 됩니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끊어야 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술, 담배, 도박 등등 많은 것들이 살아 있는 내내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래서 이 시의 <바람>은 그 모두를 공유한 메타포인 셈입니다. <지금도 늦지 않아 빨리 끊어,> 곰곰이 생각해보게 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