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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미래(近未來)의 서울 - 이승원

2002.10.11 14:54

윤성택 조회 수:1063 추천:208

근미래(近未來)의 서울/ 이승원 / 2000『문학과사회』여름호



        근미래(近未來)의 서울



        이 도시는 연중 삼백 일 이상 비 올 확률 백 퍼센트
        새우 시체가 부유(浮流)하는 튀김우동은 수증기를 내보이고
        마스카라와 아이 섀도가 번진 몸무게 사십이 킬로그램의 매춘부는
        파란 비닐 우산을 들고 편의점 앞에 서 있다
        축축이 젖어 털이 곤두선 시궁쥐들이 교미를 하고
        각각 무릎 위로 짧게 그리고 복사뼈를 덮게끔 교복 치마를 수선한
        여고생 두 명이 밴슨 앤 해지 담배를 피우며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다
        비에 젖은 풀잎처럼 곱게 빗은 단발머리는 아니다
        다리를 저는 젊은 사내가 운영하는 레코드 점에서
        도어스의 「라이더스 온 더 스톰」이 흘러나오고
        더러운 캔버스 운동화와 칠십구년산 리바이스 오공오 청바지는 물을 먹는다
        속눈썹 사이로 물방울이 흐르고
        아무도 히치하이커를 차에 태워주지 않는다
        뒷골목 폐차 안에 난자당한 소년의 시체가 이틀째 방치되어 있다
        피로 심판받았다면 물로써 정화되어야 한다
        쓰레기통 곁에 주황색 얼룩의 패드만 밟힌다
        티브이 시청도 싫증난 젊은 실업자는
        주차된 아버지의 차 안에 앉아 와이퍼를 계속 작동시키고
        시내는 항상 교통 체증이다 택시를 잡으려는 여교수의 안경이 얼룩진다
        축구를 할 수 없는 청년들이 친구 집 차고에 모여
        마셜 앰프와 워쉬본 전기 기타와 타마 드럼을 가져다놓고 합주를 한다
        유원지에 레인 코트를 입은 여자가 울면서 혼자 회전 목마를 타고 있다
        폭력 조직의 두목들이 호텔 스카이 라운지에 앉아
        우중 도시의 전망을 보며 협상을 벌인다
        브레이크를 밟다가 미끄러진 모터사이클 운전자는
        깨진 헬멧과 함께 일어날 줄을 모른다
        화교들이 모여 사는 거리의 삼층 다락방에서 대마초 연기가 눈을 따갑게 하고
        화창한 맑은 날에 리비도가 저하되는 성도착증 환자는
        낡은 가죽 재킷을 맨몸 위에 걸치고
        입주자들이 모두 떠난 폭파 예정인 아파트를 배회한다
        밤새 벼락이 친다



[감상]
기괴한 미래를 점칠 수 있는 암울함과, 엄청난 공력과 상상력에 그냥 따라 읽는 것만으로도 소설책 서너 권은 통독한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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