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행성관측 - 천서봉

2006.09.22 11:36

윤성택 조회 수:1521 추천:239

<행성관측> / 천서봉/ 《열린시학》 2006년 가을호


        행성관측

        불행이 따라오지 못할 거라 했다.
        지나친 속도로 바람이 지나갔고 야윈 시간들이
        머릿속에서 겨울, 겨울, 우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지나치게 일찍 생을 마친 너를 생각했다.
        대개 너는 아름다웠고 밤은 자리끼처럼 쓸쓸했다.
        실비식당에서 저녁을 비우다말고 나는
        기다릴 것 없는 따스한 불행들을 다시 한 번 기다렸다.
        하모니카 소리 삼키며 저기 하심(河心)을 건너가는 열차.
        왜 입맛을 잃고 네 행불의 궤도를 떠도는지.
        콩나물처럼 긴 꼬리의 형용사는 버려야겠어,
        말하던 네 입술은 영영 검은 여백 속으로 졌다.

        그래도 살자, 그래도 살자
        국밥 그릇 속엔 늘 같은 종류의 내재율이 흐르고
        사람을 끌어당기는 건 여전히 사람이지만
        나는 더 이상 사람을 믿지 않는다.


[감상]
사람과 사람도 별과 같아 서로 끌어당기는 만유인력이 있고 그 스스로 가야할 궤도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우주 속에서 순간순간 조우하는 궤도의 행성들입니다. 이 시는 그런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영영 이별을 겪는 절절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그리하여 추억은 행성의 소멸처럼 사라진 부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 <검은 여백> 앞에서 한끼의 허허로운 국밥은 산 사람의 뜨겁고 눈물겨운 실존입니다. 살아가다보면 <사람을 믿는다>는 말보다 <사람을 믿지 않는다>는 말이 더 믿음이 갈 때가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에 대한 믿음으로는 관측되지 않는 <진실>이 더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051 달1 - 박경희 2002.08.08 1503 241
1050 내 마음의 풍차 - 진수미 2001.08.16 1717 241
1049 12월 - 강성은 [3] 2005.10.26 2073 240
1048 푸른 국도 - 김왕노 2005.08.04 1421 240
1047 음암에서 서쪽 - 박주택 2002.09.24 1086 240
1046 소주 - 최영철 2001.08.06 1556 240
» 행성관측 - 천서봉 2006.09.22 1521 239
1044 엽낭게 - 장인수 2006.09.13 1272 239
1043 밤바다 - 권주열 [1] 2005.06.22 1532 239
1042 편의점·2 - 조동범 [2] 2004.03.18 1390 239
1041 정지한 낮 - 박상수 2006.04.05 1763 238
1040 전생 빚을 받다 - 정진경 2005.12.20 1671 238
1039 움직이는 별 - 박후기 [1] 2003.12.04 1597 238
1038 모니터 - 김태형 2006.06.26 1558 237
1037 나귀처럼 - 김충규 2006.07.13 1749 236
1036 어느 가난한 섹스에 대한 기억 - 김나영 2006.07.04 2417 236
1035 이발소 그림 - 최치언 2006.01.18 1632 236
1034 홈페이지 - 김희정 [2] 2005.10.07 1698 236
1033 주름들 - 박주택 [1] 2005.06.21 1379 236
1032 생크림케이크 - 조은영 2004.03.30 1519 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