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궁금하다』/ 전남진/ 문학동네
소나기
산 아래로 길이 내려온다
눈동자에 길 새겨진다
휘어져 어깨에 감긴다
눈을 감아 길을 끊는다
아주 잠시, 그리고
작게 네 이름을 부른다
그 이름 쓸쓸함에
젖는다
너를 부정한 만큼 나는 아팠다
생각을 지우려
엉뚱한 추억의 담장들을 넘어 다녔다
그때마다
송글송글 네 얼굴 솟아나
물든 나뭇잎처럼 떨어졌다
그렇게 너를 지우고 간 이별처럼
꽃을 지우며 가을이 가고
사랑한다며
팔을 툭 치고 달아나는 소녀처럼
네 마음에도 어디쯤 오래된 길 하나 뛰어가겠지
지난날 내 비겁함이
오늘은 종일 구름으로 글썽이다
때늦은 후회처럼 비 내린다
두둑두둑 산이 부러지고
길이 거칠게 튀어 오른다
피할 수만 있다면 어디든 상관없다고
함부로 뛰어가는 신발에 꽃잎이 묻어왔다
가을이 끝나는 길, 네 마음에 묻은 내가
비를 피해 뛰어가고 있었다.
[감상]
오늘도 비가 오고 있습니다. "팔을 툭 치고 달아나는 소녀처럼" 마음 또한 싱숭생숭합니다. 눈여겨보아 두었던 시인인데 시집이 나왔더군요. 그의 시편에는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따뜻함과 그리고 그 상처를 읽어내는 잔잔한 감동이 묻어납니다. 이 시가 잠시 턱 괴고 창밖을 돌아볼 여유를 만들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