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거리>/ 이승원/ 《세계문학》2005년 겨울호
그 거리
그 거리에서 소년은
책갈피 사이에 조심스레 음경을 밀어넣고
취하는 법을 배운다
소년은 그 거리에서
벽에 기대어 서고 철망너머를 소리치고
벌거벗은 남자가 붉게 매달린 회당을 등진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차갑게 국기에 대한 맹세한다
그 거리에서 소년은
카우보이모자가 베레모를 보고
부르카를 쓴 부인과 토끼소녀를 본다
배배 꼬이게 땋은 머리칼을 보고 찢어진 바지를 본다
소년은 그 거리에서
드럼을 치고
변화 중인 여자아이를 만나
맑게 삐걱이는 매트리스의 탄력을 맛본다
술과 기침약을 섞어 마시고 입술이 부르튼다
그 거리에서 소년은
울다가 잠이 들고
꿈을 꾸고
울다가 잠이 깨고
일어나 일기를 쓴다
소년은 그 거리에서
가슴이 울렁거리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날카롭게 속이 쓰리고 둔탁하게 위경련을 한다
그 거리에서 소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태어났고
노인으로 죽어갈 것을 절감한다
일부터 땀 흘리며 춤을 추고
억지로 춤을 추고 땀을 흘린다
소년은 그 거리에서
다시 취하고
이가 비스듬히 부서지고 칼과 깨진 유리에 찔리고
반영구적인 흉터를 부여받는다
상처에 물감에 넣고 색안경을 쓴다
그 거리에서 소년은 낯선 사람을 미워하고
잘 모르는 사람도 미워하고
곁에 있지도 않는 사람을 미워하고 이제 옆에 없는 사람을 미워한다
소년은 그 거리에서 갖고 싶은 것들이 많고
가진 것을 더 원하고 가진 것을 다시 원하고
가질 수 없는 것을 원하고 세상에 없는 것을 저리게 원한다
[감상]
시에 등장하는 소년은 아주 어리지도 않고 완전히 자라지도 않은 아이입니다. 누구나 이런 성장기를 거쳐 왔겠지만, 이 시에서의 소년은 음울한 정서의 문명 속에 방치됩니다. 이 시를 읽어가다 보면 왜 하필 소년일까라는 물음에 대해 나름대로의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끝없는 욕망이 꿈틀대는 이 부조리한 세상에서 진정한 어른이란 과연 있는 것일까 라는, 더 나아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발버둥치는 신산스런 자아의 내면도 엿보입니다. 표현에 있어 독특하게 행위의 인과를 뒤집는 집요한 수사가 남다릅니다. 그 거리에서 웅크리고 앉아 있는 소년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