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청, 허클베리 핀 / 김언/ 『리토피아』가을호(2002)
환청, 허클베리 핀
하루는 당신이 왔다 하루는 당신이 와서 내게 없는 바다를 꺼내어 당신
에게 주었다 그게 사랑이었다(데리다) 아니다, 나는 내 사랑이 좀더 난
해해질 것을 요구한다(수영) 아니다, 재능은 주어진 것이고 변하는 것
은 문학이다(춘수) 아니다, 죽어보니 또 정오였다(랭보) 아니다, 해탈하
고 싶다 해탈하고 싶은 마음조차 해탈하고 싶다(싶다르타) 아니다, 살
고 봐야겠다(발레리) 아니다, 모든 새로운 밤은 능숙한 아내보다도 서
투른 애인에게 훨씬 더 가능성이 있다(바흐친) 아니다, 원래 제목은 그
게 아니고 곱슬머리 앤이다(허클베리) 아니다, 빨간 것은 나무다(상순)
아니다, 나는 단지 콩사탕이 싫다고 했을 뿐이다(승복) 아니다, 태초에
환청이 있었다 아니다,
[감상]
괄호와 쉼표를 시의 영역까지 끌어옵니다. 최근 김언 시인의 시에는 독특한 괄호 쓰임이 많더군요. 괄호만큼 은밀한 것도 없겠으니 귀에 속삭이듯 환청이 있을 법합니다. 그렇게 들리는 대로의 말들은 무의식의 터널을 통과하면서 조금씩 변형됩니다. 이러한 일련의 작용들을 시로 이어주는 흐름이 좋네요. 김언 시인의 괄호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사뭇 그의 행보가 기대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