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박인환문학상 수상작 / 박찬일/ 『시현실』 2002 가을호
나는 푸른 트럭을 탔다
사람들아 미안하다 나는 푸른 트럭을 탔다 푸른 트럭에서 나는 그대들 전부 잊기로 한다 나도 잊기로 한다
푸른 트럭에서, 나는,
오이 당근을 파느라 감자 고구마를 파느라 양파를 파느라 시금치 마늘을 파느라
푸른 트럭에서 나는 수박 참외를 파느라 토마토 사과 귤을 파느라 배를 파느라 계란을 파느라 정신이 없다.
이면수 꽁치를 파느라 조기를 파느라 고등어를 파느라 푸른 트럭에서 푸른 트럭을 파느라 푸른 트럭만 남기고 파느라
싱싱한 야채 있습니다 싱싱한 과일 있습니다 싱싱한 계란 있습니다 싱싱한 생선 있습니다 녹음기에 녹음하느라
녹음기를 켜놓느라 싱싱한 야채 있습니다 싱싱한 과일 있습니다 싱싱한 계란 있습니다 싱싱한 생선 있습니다 정신이 없다.
미안하다 사람들아 나는 정신이 없다
푸른 트럭에서 나는 그대들 전부 잊었다 나도 잊었다 푸른 트럭으로 사라지려고 한다 푸른 트럭을 몰고 사라지려고 한다 미안하다 사람들아 나는 푸른 트럭에 있다
정신이 없다 나는 포도주를 마신다 푸른 트럭에서 포도주를 마신다 야채를 팔아 과일을 팔아 계란을 팔아 생선을 팔아 포도주를 마신다 포도주만 마신다 정신이 없다
사람들아 미안하다 나는 푸른 트럭을 탔다 푸른 트럭에서 팔러 다닌다 푸른 트럭을 팔러 다닌다 푸른 트럭만 빼고 팔러 다닌다 푸른 트럭에서 마신다 붉은 포도주를 마신다 그와 함께 붉은 포도주를 마신다 미안하다 사람들아
나는 푸른 트럭을 탔다
[감상]
아파트 입구에서 확성기로 들리는 저 소리, 이 시는 그 소리처럼 반복된 어조로 진행됩니다. 그리고 이 시를 다 읽고 나면 남은 것은 푸른 트럭과 정신 없어 하는 정신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운율감이 이 시를 푸른 트럭에 태워 여기까지 보내왔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