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인간> / 김언 / 《창작과비평》2005년 여름호
거품인간
그는 괴롭게 서 있다. 그는 과장하면서 성장한다. 한나절의 공포가
그를 밀고할 것이다. 한나절이 아니라 한나절을 버틴 공포 때문에 그
는 잘게 부수어진다. 거품과 그의 친구들이 모두 다른 이름이다. 그
것은 목적을 가지지 않는다. 공포 때문에.
한 번에 일곱 가지 표정을 짓고 웃는다. 그의 눈과 입과 항문과 성
기가 모조리 분비물에 시달린다. 한 명이라도 더 흘러 나오려고 발버
둥을 치는 것이다. 정오에.
가장 두려운 한낮에 소란을 베껴가며 폭죽은 터진다. 밤하늘의 섬
광이 여기서는 외롭다. 표면까지 왔다가 그대로 튕겨나가는 소음들.
밖에서는 시끄럽고 안에서도 잠잠한 소란을 또 한 사람이 듣고 있다.
그는 전혀 다른 공간이다. 그는 괴롭게 서 있다.
공기가 그를 껴안을 것이다.
[감상]
한낮 공원 벤치에서 아이가 부는 비누거품놀이. 이 한가하고 여유로운 풍경이 이 시에서는 인간의 괴로움과 공포로 재탄생됩니다. 천천히 부풀어오는 비누거품은 때로는 터지기도 하고, 때로는 막대 끝에서 날아올라 공중에 떠다니겠지요. 여기서 공포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두려움 같은 것이겠다 싶습니다. 그 비눗방울에게 시인은 의식과 고뇌를 부여합니다. 그리하여 비눗물 속 ‘더 흘러 나오려고 발버둥을 치는’ 또 다른 ‘그’를 발견합니다. 거품의 뚜렷한 안과 밖은 선악(善惡)처럼 전혀 다른 공간이므로 이것을 공존시키는 그는, 괴롭게 서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거품을 부는 아이의 의지가 우주의 어떤 질서였다면, 탄생과 소멸 앞에 우리는 여전히 거품인간일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