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내 영혼은 오래 되었으나 - 허수경

2001.04.16 10:50

윤성택 조회 수:2124 추천:327

『내 영혼은 오래 되었으나』/ 허수경/  창작과비평사, 2001




내 영혼은 오래 되었으나



아이들은 장갑차를 타고 국경을 지나 천막 수용소로 들
어가고 할미는 손자의 손을 잡고 노천 화장실로 들어간다
할미의 엉덩이를 빛은 어루만진다 죽은 아들을 낳을 때처
럼 할미는 몽롱해지고 손자는 문 바깥에 서 있다 빛 너머로
바람이 일어난다

늙은 가수는 자선공연을 열고 무대에서 하모니카를 부른
다 둥근 나귀의 눈망울 같은 아이의 영혼은 하모니카 위로
날아다닌다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빛 속으로 들어간 것
처럼 아이의 영혼에 엉긴다 그러니까 누군가를 기다리는
영혼처럼 헝덩거리며 하모니카의 빠각이는 이빨에 실핏줄
을 끼워 넣는다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장갑차에 아이들의 썩어가는 시
체를 싣고 가는 군인의 나날에도 춤을 춘다 그러니까 내 영
혼은 내 것이고 아이의 것이고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감상]
어느 작고 얼굴이 까만 여인이
줄담배를 피우며 킥킥거린다.

당신……, 당신이라는 말 좋지요. 그래서 불러 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나, 킥킥…….


마치 강렬한 색이 꺼칠꺼칠 만져질 것 같은 유화油畵 같은 시편,
52개의 그림을 몇 점씩 마을버스에 걸어 놓았다가,
사무실 책상에 걸어 놓았다가,
5호선 지하철 안에 걸어 놓았다가.

葉書 한 장 띄우고픈.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191 마블링 - 권오영 2020.04.23 356 0
1190 조난 - 윤의섭 2011.01.05 693 75
1189 얼음 이파리 - 손택수 2011.01.01 696 61
1188 가방 - 유미애 2011.01.04 711 80
1187 강변 여인숙 2 - 권혁웅 2011.01.06 727 72
1186 와이셔츠 - 손순미 2011.01.10 751 69
1185 근황 - 정병근 2010.12.31 755 81
1184 그믐 - 김왕노 2011.01.13 782 75
1183 바다의 등 - 차주일 2011.01.11 806 67
1182 부레 - 박현솔 2011.01.29 815 108
1181 단봉낙타의 사랑 3 - 박완호 2003.04.17 846 163
1180 자전거 보관소를 지나며 - 문정영 2003.01.03 854 172
1179 추상 - 한석호 2009.11.21 855 119
1178 뚜껑이 덮인 우물 - 이향지 2003.01.06 872 195
1177 공중의 유목 - 권영준 [1] 2003.02.04 888 160
1176 뿔에 대한 우울 - 김수우 2002.12.24 894 161
1175 불우를 씻다 - 유정이 2011.01.27 895 112
1174 암각화 - 오탁번 2003.04.01 902 165
1173 대설 - 정양 2009.11.19 905 109
1172 나무 안에 누가 있다 - 양해기 2009.11.18 906 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