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약속/ 함민복/ 세계사
백신의 도시, 백신의 서울
가로수가 더이상 전원에 부착된
안전벨트로 보이지 않는 도시
서울의 클리토리스 남산
거대한 주사기처럼 스포이트처럼
발광하며 문명을 주사하는 타워
어둠이 내리면 연꽃처럼 피어나는 광고
여관 개업식 날 만국기를 다는 곳
서서히 사람들을 처형하는 독가스
합법적으로 내뿜으며 질주하는 자동차
현재의 인구와, 작금의 교통사고 현황판과,
환경오염도와, 일기예보와, 활자뉴스와…
순간적 인식과 찰나적 망각을 종용하는
슬픔과 아픔이 숙성될 수 없는
정서의 겉절이 시대
적당량의 희망과 고통과 죽음을 투여받아
전신이 무감각화된 서울,
출판 최대의 폭력물, 역사책에
대환란을 기록할 기술지상주의자들
텔리비전에 스티로폴 눈이 내리며 주는 예시
머지않아 진짜 스티로폴 눈처럼 내릴
단테가 이 도시에 태어났더라면
일상의 모작으로 충분했을 신곡, 지옥편
가로수가 시멘트에 질식사한 흙의 상주처럼
새애끼줄로 복대하고 머리를 풀어헤친 오, 서울
[감상]
시각적이고 회화적인 이미지가 돋보이는 시입니다. 그리고 도시를 바라보는 상상력이 시니컬하고요. 문명에 대한 강한 비판의식이 느껴집니다. 그래서였던 것일까요. 도시를 벗어나 강화도에 계시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서울에서 알약처럼 뜨는 태양을 맞는 사람들, 그 중에 제가 섞여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