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가 날아간 하늘』 / 문정영 /시산맥 동인지 『시작』(신간)
자전거 보관소를 지나며
밤공원 옆 보관소 채양아래
한 대의 낡은 자전거 불을 끄고 누워 있다
누군가 페달을 밟는 힘으로 밤은 오고, 길은
싸늘한 공기를 동여맨 나무의 밑동을 지나는가
바퀴 위에 그가 태우고 다니던 한 낮의 햇볕이
잠들어 있다 누가 깨우지 않아도 아침이면
햇살은 부시시한 얼굴로 바퀴를 돌릴 것이다
아이가 두고 간 곰인형도 엄마의 품을 생각했는지
그의 몸통에 편안히 기대고 있다
어제 달리다 지친 그의 뒷바퀴가
이상하게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페달의 힘을 받아 공기를 돌리던
쇠살들의 집이, 사라진 것이다
알고 보면 그의 몸에서 가장 잘 닳지만
전신으로 일을 하는 것은 바퀴가 아닌가
다순 압축 공기로 몸 부풀리는 시절은 가고
한 쪽 바퀴가 사라진 도로에는 중심을 못 잡는
탈것들이 서로를 피하려다 몸 부딪힌다
그는 몸의 일부가 상하고서야 안다
바퀴를 돌리는 힘이 길을 당겨온다는 것을
햇살을 나른다는 것을
[감상]
보관소에 세워진 자전거에서 우리네 삶을 발견한 이 시는 사유의 깊이와 간결함이 잘 조절되었습니다. 햇살이 바퀴를 돌리는 것이나, 바퀴를 돌리는 힘이 길을 당겨온다는 것이나 상상력의 신선함이 엿보입니다. 어릴 적 자전거가 갖는 매력, 그 신기한 쇳덩이의 중심을 세우며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얼마나 설레였던가요. 자전거만 생각하면, 햇볕 아래 자전거만 생각하면 마음이 싸해집니다. 그때 그 자전거는 지금 어디에, 정말 어디에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