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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 여인숙 2 - 권혁웅

2011.01.06 10:18

윤성택 조회 수:727 추천:72


《소문들》/  권혁웅 (1997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 《문학과지성 시인선》384


          강변 여인숙 2

        수면이 햇빛에 몸을 열어
        파경(破鏡)으로 변할 때
        산지사방 가출한 마음들이
        돌아와 눕는 곳,
        거기가 강변 여인숙이다
        엎드려 자고 일어나서
        입가에 묻은 침을 스윽 닦아내듯
        수면이 시치미 떼고
        제 몸을 미장하는 곳,
        다 바람이 왔다 간 사이의 일이다
        깨진 거울들을 나누어 주는
        저 박리다매(薄利多賣)가 다 무엇이냐
        우리는 거울 뒤편에서
        화장을 고치거나 옷을 갈아입는다
        그러다 문득
        바람이 문을 열어젖힐 때
        무슨 벽화처럼이나 그 뒤에 묻혀
        발굴되고 싶은


[감상]
여관이며, 장, 모텔이라는 이름에 밀려 사라져 가고 있는 여인숙. 그러나 시인들의 여인숙은 아직도 마음의 골목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여인숙은 말 그대로 규모가 작고 값이 싼 여관을 말합니다만, 시인들에게는 그 나름의 서정과 신파가 있습니다. 이 시는 이러한 이미지와 또 색다른 관점에서 투숙 계기에 대한 상상을 이어갑니다. 파경, 가출, 시치미, 바람… 어쩌면 이러한 암시의 관계성이 지금 우리의 군상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커뮤니케이션 장치로 ‘벽화’가 기능하듯, 여인숙에는 아직 발굴되지 않은 시인들의 내러티브와 스토리텔링이 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각기 다른 여인숙의 이름으로 그곳을 머물다 갑니다. 밀물여인숙(최갑수), 살구나무여인숙(장석남), 신도여인숙(함순례), 은행여인숙(송재학), 남양여인숙(나기철). 매월여인숙(권선희), 제비꽃여인숙(이정록), 파도여인숙(안시아), 탱자나무여인숙(서규정), 은행나무여인숙(김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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