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흘러다니는 그림자들 - 신지혜

2007.06.14 18:01

윤성택 조회 수:1343 추천:173

《밑줄》 / 신지혜 (2002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 《시작》시인선 2007


        흘러다니는 그림자들

        사람은 없고 사람 그림자들만 돌아다닌다
        그림자들이 검은 자루처럼 밑으로 처진다 혹은
        고무줄처럼 자유자재로 늘어나기도 하고 형체를
        바꾸기도 한다 벽이나 문지방에 붙어 있기도 한다
        가만히 보라.
        이슥한 저녁, 주체할 수 없어 쓰러지는
        벽들을 떠받치는 것들은 모두 그림자들뿐이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자신의 주인들 몰래
        서로 몸이 바뀌기도 한다. 그러나 주인은 모른다
        혹은 주인이 잠자리 들 때 몰래 탈출하기도 한다
        그림자가 출몰하는 곳에선
        늘상 그림자들끼리 주인을 팔아치우기 위해서
        암거래가 이루어진다 그림자들도 같은 부류끼리
        끼리끼리 뭉쳐 다닌다 보았는가 거리를 떠도는
        그림자들은 동작이 민첩하다
        그림자들은 모의하여, 자신의 주인을 멀리
        추방시키기도 한다 한때의 권력이 되었던 주인은
        위기의 벼랑 앞에서 최후의 목격자인 자기 그림자 앞에
        두 무릎을 뚫을 때 있다.
        지금 네 옆을 돌아보라 그림자들이 침묵으로 네게 반란한다


[감상]
그림자는 동전의 양면처럼 원래의 실체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이 시는 그런 그림자에게 인격을 부여하고 더 나아가 자신의 존재 근원인 '주인'의 제거도 꿈꾸게 합니다. 이 부분이 이 시의 돋보이는 상상력의 부분이지요. '벽들을 떠받치는 것들은 모두 그림자들뿐'이라는 확신, '그림자들이 침묵으로 네게 반란한다'는 위기감 등은 스릴러적인 요소로 팽팽한 긴장을 이끕니다. 다 읽고 나면 온전한 자신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이 남는군요.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011 어도 여자 - 김윤배 2007.06.07 1083 138
1010 자유낙하운동 - 권주열 2003.12.20 1084 205
1009 음암에서 서쪽 - 박주택 2002.09.24 1086 240
1008 움직이는 정물 - 김길나 2003.09.26 1086 183
1007 선명한 유령 - 조영석 2004.11.15 1086 165
1006 참붕어가 헤엄치는 골목 - 김윤희 2003.01.29 1087 196
1005 공중부양 - 박강우 2004.04.12 1087 225
1004 연두의 시제 - 김경주 [1] 2009.12.02 1087 119
1003 브래지어를 풀고 - 김나영 2011.01.12 1087 78
1002 처용암에서 1 - 김재홍 2003.09.24 1088 195
1001 프랑켄슈타인 - 김순선 2004.06.17 1088 174
1000 론강의 별밤, 테오에게 - 박진성 2002.05.07 1089 190
999 비닐하우스 밤기차 - 이승주 2011.02.21 1089 116
998 골목의 캐비넷 - 정병근 2003.10.27 1090 192
997 시,시,비,비 - 김민정 2010.01.16 1090 116
996 그의 바다는 아직 살아 있다 - 박현주 2002.10.29 1092 180
995 모든 꽃은 흔들리며 뿌리로 간다 - 강미정 2003.02.03 1092 169
994 구멍에 들다 - 길상호 2003.06.10 1092 154
993 구관조 - 전정아 2007.05.31 1092 166
992 이장 - 한승태 2002.06.18 1094 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