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자법」 / 문인수 / 『작가세계』2002년 겨울호
철자법
겨울 포도원의 포도나무 넝쿨들은 줄줄이 팽팽하게 가로 질러놓은 철선을
따라 삐뚤삐뚤 끌려가고 있다.
그래, 삐뚤삐뚤 삐져 나오는 이 철자법!
울퉁불퉁 만져지는 것이 거친 계류같다. 결박당하지 않는 血行이 있다.
이걸 붉게 마셨구나 혹한의 한복판에다가 굵게 양각하는, 그렇게 계속 길
뚫는, 오 오매불망오매불망 가는,
자필의 끔찍한 기록이 있다. 달콤한 사랑,
[감상]
포도원 철사를 감고 있는 넝쿨들에서 '철자'를 인식해내는 발견이 새롭습니다. 그 혈행을 흔적으로 마신 포도, 혹은 그 붉은 포도주의 느낌이 새콤하게 다가옵니다. 이 시의 포인트는 무엇보다도 철사줄에 휘갈겨진 서명 같은 넝쿨입니다. 다르게 보기. 남들과 다르게 보기, 이것이야말로 숨막히는 현실에서 詩로 살아남을 최고의 호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