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와 피라미드」/ 이승하/ 『시로 여는 세상』2003년 여름호
피라미와 피라미드
살아 있는 것들은 다
살려고 애쓴다 조금이라도 더 살아보려고
몇 달 내리 가뭄이 들어도 피라미는
강바닥에 머리 박고 버틴다
한 달 내내 비가 퍼부어도
나무뿌리는 땅을 움켜쥐고 버티고
어린 날의 놀이터 감천 냇가에서
내가 잡은 수많은 피라미
잡았다 놓친 그 중 몇 마리는
눈깜짝할 사이에 사라지면서
나를 비웃었을까 나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얼씨구 달아났을까
죽어가면서도 영원히 살고 싶었던
저 먼 시절 이집트의 왕들
피라미 같은 인간을 채찍질하며 세운
사막의 거대한 무덤들
생명 연장의 꿈을 키우는 동안
얼마나 많은 파라미가 죽었을까
그림자가 너무 길다 태양신의 나라
시간의 봉분을 높다랗게 올린
수많은 파라미의 노역과 죽음을
상기해야 하리 저 무모하게 거대한
파라미의 피라미들 앞에서
[감상]
어감이 비슷한 '피라미'와 '피라미드'의 관계를 이 시는 깊은 통찰로 엮어냅니다. 전혀 다른 별개의 것을 잇대어 놓는 연상작용이 이 시의 에너지이지요. '죽어가면서도 영원히 살고 싶었던'의 코드에서 분화되어 가는 상상력은 결국 '욕망'이라는 '무모하게 거대한' '피라미드'를 발견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