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자야 6, - 수족관 낙지 / 이기와 / 『시로 여는 세상』 6월호
영자야 6
- 수족관 낙지
귀찮아,
쓴물 단물 다 빼먹고
버려진 폐선의 밧줄처럼
흐느적거리는 이 팔다리
수갑을 채워 줘
좁은 영창에서 난동 피우지 못하게 꽉 묶어 줘
항생제를 짬밥으로 먹은 덕에
흠집 하나 없이 반들거리는 이마빡
배신당한 누군가를 위해
분노에 겨워 덥석 검어 쥔 살인용 회칼 대신
담벼락에 헤딩하고 보복 없이 자폭할 수 있도록
머리통을 공짜로 빌려 주고 싶어
팍, 먹물을 폭죽처럼 방사하며
생의 근원도 목적도 없이 매매 된
꼴뚜기만도 못한,
다족류 화류계의 폐막식을 시작하고 싶어
무간지옥으로 떨어지는 순간
내 부드럽고 긴 발가락 만한 성기를 가진
돈 많고 명 짧은 홀아비의 뒷통수를 빨판으로 물고
한 못 푼 물귀신처럼 수장되고 싶어
그렇지 않고 운좋게 석방되면
이 치욕의 수렁에서 나가는 순간, 눈이 뒤집혀
죄인지 모르고 죄를 범할 때까지
방조했던, 니들 다
확, 불질러 버리겠어!
[감상]
아주 매운 매운탕을 먹을 때, 그 음식을 떠올리듯 자극적입니다. 대체로 이기와 시인은 그런 극점에 시를 올려놓고 시심을 일굽니다. 낙지가 갇혀 있는 수족관을 영창 안처럼 비유하기도 하고, 나가기만 하면 금방 일을 낼 것 같은 부릅뜬 시선이 인상적입니다. 왜 이런 시를 읽다보면 속이 시원해질까요? 뜨거운 매운탕을 "어, 시원하다!"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성질의 것일까요. 제가 매번 하는 말이 생각나네요. 산낙지를 먹으면 낙지가 위 속에서 살아 있으면서 소주를 대신 먹어 준대! "니들 다/ 확, 불질러 버리겠어!" 이 시원한 발설, 내내 통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