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대포 일몰/ 최영철/ 계간 『시작』창간호 p.295
다대포 일몰
해지는 거 보러 왔다가
해는 못보고
해지면서 울렁울렁 밟아놓고 간
바다의 속곳, 갯벌만 보네
해가 흘려 놓고 간 명백한 지문
어서 바닷물을 보내
현장검증 중인 지문을 지우지만
갯벌은 해가 남긴 길고 긴 증거를
온몸으로 사수하네
시부렁 시부렁 등을 밀어붙이며
그 지문에 다 쓰여 있다고
한 여인이 재빨리 와
이 과격한 문서를
저 혼자 읽고 숨기네
뒤꿈치로 쿡쿡 밟으며
쑥쑥 지우며.
[최영철시인 시작메모]
내 집에서 서해는 멀리 있지만 서해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 전부터 내 가슴에서 이미 술렁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다대포 바다는 내 집의 남쪽이지만 자주 나는 방향감각을 잃고 그곳을 서쪽으로 착각한다. (문학사상 2월호)
[감상]
시를 읽으니 해지는 갯벌의 풍경이 선합니다. 한 여인이 말 따옴표 같은 호미로 조개라도 캐고 있었던 것일까요. 은밀한 듯 하면서 그리고 한사코 덮어두려는 밀회. 이렇게 매혹적인 의인의 방법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일몰을 볼 때마다 마음이 자꾸 달뜨는 것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