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심사 거울못/ 손정순/ 『문학사상』상반기 신인상(2001)
개심사 거울못
단풍으로 겉옷 걸친 백제 코끼리 한 마리 쓸쓸히 웅크린 발치 아래
개심사 경지(鏡池), 여우비 오듯 낙엽들 수수거린다 마음 주렴으로
걸러내면 잎 다 떨군 굴참 몇 그루도 알몸으로, 거울에 제 모습 비추
고 섰다 조각 연잎들 하늘 향해 퍼런 손바닥 펼치자 흰 구름 그 위에
내려앉고 푸르게 걸친 정방형의 연못 속으로 우듬지 끝끝까지 아롱
대며 감나무 한 그루하늘의 환한 저 연등들 쳐다본다 나 그 등불 받
쳐들고 절반으로 허리 자른 아주 옛날의 나무다리 건너 상왕산(象王
山)임금 코끼리 등허리에 올라타 하늘문 두드리고 싶다 순간 부르릉,
정적을 깨며 오토바이 탄 우체부 몇 십리 숨차게 달려온 듯 툴툴툴
멎으며 세상 소식 들고 막 절문으로 들어선다
[감상]
개심사 절간의 풍경이 선합니다. 이 시가 좋은 이유는 그 안에 등장하는 사물들이 나름대로의 성격과 움직임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찌보면 詩는 사람에 관한 발설이고, 그러다보니 세상의 것들을 어떻게 의인화시키느냐에 따라 詩스러움의 깊이를 알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