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목단꽃 이불 - 손순미

2003.04.15 10:35

윤성택 조회 수:1004 추천:149

「목단꽃 이불」/ 손순미/  『시와생명』2002년 여름호



       목단꽃 이불



        내가 버린 이불이었나
        낯익은 목단꽃 이불
        지하도 사내의 몸을 덮고 있다
        비켜요 비켜, 구두들의 소란에
        들썩이는 사내의 잠
        목단꽃 이불이 자꾸만 새나오는 사내의 잠을
        꼬옥 덮어 주고 있다
        밥처럼 따뜻한 잠을 배불리 먹으며
        사내의 잠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목단꽃 붉은 옷을 입고
        사내는 까마득한 유년을 방문하고 있는 것이다
        사내의 등짝에 오래 보관되어 있던
        그리운 집 하나가 나온다
        얘야, 어서 오너라
        아직도 어미의 젖은 저 우물처럼 마르지 않았단다
        세상 어디에 어미 만한 집이 있더냐
        이미 익을 대로 익어 버린 사내에게
        젖은 물리고픈 어머니는 사내의 잠을 두드린다
        얘야,
        목단꽃 붉은 이불이 둥실 떠오른다


[감상]
누구에게나 잠은 또 하나의 세계입니다. 죽는 날까지 우리는 잠과의 수 없는 교신을 통해 현생의 삶을 데이터화하는지도 모릅니다. 이 시는 지하철 구석에서 노숙하는 사내의 과거와 따뜻한 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믿고 싶을 정도로 마지막 행이 눈에 남네요. 이렇듯 우리에게 희망이 없다면 삶의 전지(電池)가 다 소모된 것입니다. 좋은 시가 그 충전이 되었으면 합니다. 볼수록 좋은 시네요.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131 개심사 거울못 - 손정순 2002.11.04 978 170
1130 새끼발가락과 마주치다 - 김사인 2003.02.05 983 169
1129 바람분교 - 한승태 2002.12.04 984 179
1128 내외 - 윤성학 2003.06.23 985 169
1127 한천로 4블럭 - 김성수 2003.03.05 988 202
1126 만리동 미용실 - 김윤희 2003.05.20 990 164
1125 폭주족의 고백 - 장승진 [1] 2009.02.12 992 111
1124 사유하는 텔레비전 - 우대식 2004.01.05 993 210
1123 해바라기 - 신현정 2009.11.13 998 118
1122 바닷가 사진관 - 서동인 2003.11.01 999 183
1121 바코드, 자동판매기 - 이영수 2002.05.21 1000 178
1120 무덤생각 - 김용삼 2003.01.23 1000 223
1119 못을 박다가 - 신현복 2009.12.07 1003 112
1118 부리와 뿌리 - 김명철 [1] 2011.01.31 1003 109
» 목단꽃 이불 - 손순미 2003.04.15 1004 149
1116 산란2 - 최하연 2003.11.27 1004 178
1115 어물전에서 - 고경숙 2002.11.19 1005 180
1114 영자야 6, 수족관 낙지 - 이기와 2002.06.03 1007 182
1113 다대포 일몰 - 최영철 2002.06.26 1007 180
1112 공사장엔 동백나무 숲 - 임 슬 [1] 2002.11.07 1007 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