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단꽃 이불」/ 손순미/ 『시와생명』2002년 여름호
목단꽃 이불
내가 버린 이불이었나
낯익은 목단꽃 이불
지하도 사내의 몸을 덮고 있다
비켜요 비켜, 구두들의 소란에
들썩이는 사내의 잠
목단꽃 이불이 자꾸만 새나오는 사내의 잠을
꼬옥 덮어 주고 있다
밥처럼 따뜻한 잠을 배불리 먹으며
사내의 잠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목단꽃 붉은 옷을 입고
사내는 까마득한 유년을 방문하고 있는 것이다
사내의 등짝에 오래 보관되어 있던
그리운 집 하나가 나온다
얘야, 어서 오너라
아직도 어미의 젖은 저 우물처럼 마르지 않았단다
세상 어디에 어미 만한 집이 있더냐
이미 익을 대로 익어 버린 사내에게
젖은 물리고픈 어머니는 사내의 잠을 두드린다
얘야,
목단꽃 붉은 이불이 둥실 떠오른다
[감상]
누구에게나 잠은 또 하나의 세계입니다. 죽는 날까지 우리는 잠과의 수 없는 교신을 통해 현생의 삶을 데이터화하는지도 모릅니다. 이 시는 지하철 구석에서 노숙하는 사내의 과거와 따뜻한 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믿고 싶을 정도로 마지막 행이 눈에 남네요. 이렇듯 우리에게 희망이 없다면 삶의 전지(電池)가 다 소모된 것입니다. 좋은 시가 그 충전이 되었으면 합니다. 볼수록 좋은 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