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열」/ 권영준/ 현대시 2003년 11월호 이달의 시인 中
접열(接悅)
흔들리는 측백나무에
자연사랑 팻말을 달기 위해
대못을 박았다
벌겋게 발기한 못이
틈새로 사정없이
제 온몸을 밀어 넣자
속절없이 몸을 여는 나무
못대가리는 나이테 가장 깊숙한
자궁을 찾아
단단히 들러붙었다
측백나무가 접열을 이기지 못해
파란 수액을 토해내자
새봄이 왔다
팻말의 글자는 다 지워졌지만
못대가리를 꼭 끌어안은 나무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감상]
측백나무와 대못의 관계를 통해 우리의 삶을 들여다봅니다. 남성성과 여성성의 미묘한 차이를 이처럼 자연보호 푯말로 드러내다니 경이롭습니다. 마지막 연의 '팻말의 글자'가 다 지워져도 '못대가리를 꼭 끌어안은 나무'의 부분에서 마음이 애틋해집니다. 정작 못질의 용도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연보호'였으나, 그 '자연보호'조차 지워져 버린 오랜 시간 후에도 측백나무는 팻말을 끌어안고 있군요. 예전에 보았던 멜로영화 같았을까요. 뒷골목 삶을 살던 그가 그녀를 만나 강제로 사랑을 하고, 그녀에게 매료된 그는 이제 착한 사람이 되고, 그들에게도 봄은 오고, 어느날 남자들이 찾아와 그에게 과거로 되돌아가자고 하고, 그러나 어찌어찌하여 과거와 격투 끝에 그가 죽게 되고, 그리하여 남은 여자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뱃속의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