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란2」/ 최하연 / 『현대시』 2003년 11월호
산란2
비가, 알을 낳는다
전선 밑에 몽글지게 붙여놓은 알들
두 줄의 전선이 지나가면
허공의 인큐베이터는 상하층 복합구조
남대천의 연어는
세숫대야에 알을 낳아
낳다 실족한 비알들
처마 아래 수북하다
세숫대야엔, 오류를 모르는 메모리들과
양양내수면연구소의 양어장
그 하수구를 향해 튀어 오르는 실행 파일과
아, 며칠 째 목 졸린 햇빛과
머나먼 번식여행을 떠나온 비떼들
바람의 요도를 통과해
다리 벌린 고목의 산도(産道)를 빠져나와
무정란의 빗방울들 우우
수 만 킬로미터의 원정출산으로
얻어가는 남대천의 시민권
그 사각의 시멘트 블록 부화장에서
비의 뒷돈을 댄 검은 달처럼, 너는
어둠 속에 숨고
세숫대야를 휘젓던 너는, 너의
손가락 사이로 빗방울 다 흘리고
[감상]
읽을수록 깊이가 새로운 시입니다. 마치 '알'이라는 비유의 핵심에서 흘러내린 여러 가지 징후들이랄까요. 연과 연 사이 사유의 폭이 깊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습니다. 이렇듯 시는 낯설음의 문양을 읽어가며 그 낯섦이 품어내는 생경함에서 존재를 발견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비의 알, 하수구의 실행파일, 목 졸린 햇빛, 비의 뒷돈을 댄 검은 달들의 제각기 심장을 달고 활자에 박혀 숨을 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