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의자에 앉아 바다를 보다》/ 우대식/ 천년의시작
사유하는 텔레비전
우리 집 뒷산에 누군가 가전제품을 버리기 시작하면서 텔레비전이 무려
열 대 가까이 버려졌다. 어떤 놈은 모로 처박히고 어떤 놈은 나무 둥치에
버젖이 걸터앉아 있기도 하다. 로뎅의 조각처럼, 백남준의 비디오아트처
럼 그 놈들은 각기 무언가를 열심히 사유하고 있었다. 햇빛의 방향과 농
도에 따라 끊임없이 수신된 이미지를 화면에 주사했다. 놀라운 일은 화
면에 비추어진 모든 것들이 살아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죽은 듯 고요하
다가 일순 생생한 바람이 떠오르면 함께 떨며 몸부림치는 풀잎과 나무들.
온 산에 가득한 텔레비전들이 밤마다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감상]
텔레비전은 항상 브라운관 안 조합된 기계적 장치로 인해 풍경을 보여주는 것이 보통입니다. 이 시는 환경 폐기물처럼 버려진 TV들이, 스스로 사유한다는 직관을 보여줍니다. 어떠한 전기의 힘도 빌리지 않고 고요한 뒷산의 풍경을 담아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쌍방향 소통의 수단이 아닐까 싶고요. 버려지고 소외된 사물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고, 우리의 이웃으로 만드는 살가운 시선이 인상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