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거리에서 - 유문호

2002.12.31 10:54

윤성택 조회 수:1055 추천:178

거리에서 / 유문호 / 『오늘의 문학』으로 등단



        거리에서


        서 있었다.
        잡음 심한 핸드폰 속에서
        뚝, 뚝, 끊겨 앞뒤가 모호한 대화 속에서
        뇌수를 적시는 햇빛 속에
        부서지는 사람들 틈바구니
        이리저리 돌아누워도 편치 않은
        도시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가판대 나란히 앉아
        어느 것이 사실보도인지 모를
        조간신문들이 울며 지나갔고
        까만 리무진
        자동차가 근엄한 웃음을 짓고 지나갔다.
        소시민의 얼굴처럼
        한 떼의 비둘기가
        아프게 먹이를 쪼며 지나갔고

        박보장기 앞,
        쪼그리고 앉아 묘수를 생각하는 사람들
        더 이상의
        무릎을 탁, 치는 묘수는 없다고
        고개를 흔든다.

        이상한 일이다.
        그 언젠가도 이 거리를 본 듯 하다.


[감상]
가끔 이처럼 낯선 곳인데도 과거에 와본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게 꿈이었는지 초현실적인 어떤 잔상 같은 것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만, 문득문득 생각에 잠기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 시는 그러한 내면의 풍경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삶 또한 묘수를 바랄 수도 없는 걸까요. 누군가 수를 놓는 순간, 씨줄과 날줄의 확률은 또 한번 교직이 되면서 수많은 인연의 피륙에 덧대질 겁니다. 하여 묘수도 잘 짜여진 필연일 것. 마지막 연이 인상적입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51 가방, 혹은 여자 - 마경덕 [2] 2005.12.10 1785 217
150 벽 - 유문호 [1] 2006.04.25 1786 219
149 겨울 모스크바 편지 - 김성대 [1] 2011.02.11 1789 128
148 못은 밤에 조금씩 깊어진다 - 김경주 [1] 2006.08.17 1791 196
147 아직은 꽃 피울 때 - 하정임 2004.08.19 1792 197
146 첫사랑 - 진은영 [2] 2001.09.11 1794 190
145 사랑에 대한 짤막한 질문 - 최금진 2001.12.03 1795 207
144 제기동 블루스·1 - 강연호 [2] 2001.04.10 1801 283
143 민들레 - 이윤학 2001.06.13 1803 285
142 선풍기 - 조정 [1] 2005.01.25 1807 178
141 오래전에 잊은 이의 눈썹 - 허수경 [2] 2011.03.15 1813 146
140 뒤란의 봄 - 박후기 [1] 2006.04.01 1820 233
139 오늘 당신을 만난 데자뷰 - 박선경 2006.01.11 1824 255
138 남해 유자를 주무르면 - 김영남 2011.04.06 1824 160
137 저무는 풍경 - 박이화 [1] 2006.05.02 1825 208
136 아침의 시작 - 강 정 [1] 2007.04.17 1825 164
135 식당에 딸린 방 한 칸 - 김중식 [1] 2001.05.02 1826 278
134 별이 빛나는 밤에 - 장만호 2008.11.26 1829 128
133 당신은 - 김언 [1] 2008.05.26 1837 162
132 사랑니 - 고두현 [1] 2001.07.11 1841 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