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당신은 - 김언

2008.05.26 17:29

윤성택 조회 수:1837 추천:162

「당신은」 / 김언 (1998년 『시와사상』으로 등단) / 《현대시학》2008년 4월호


        당신은

        ―이 시대의 시들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그렇게 오래 서 있어본 적이 없다.

        ―그래도 볼 것은 다 보지 않았나?
        ―그건 침실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나는 걸어 다녔다.

        ―그래도 옷차림이 바뀌지 않았나?
        ―패션만 보고 그 사람의 심성이 곱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건 패션이 아니라 포즈 아닌가?
        ―멍청이들한테는 둘 다 똑같다.

        ―구분하는 방법이라도?
        ―그 정도로 성숙했다고 보지 않는다. 우리가.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쉰다.

        ―안과 밖의 구분이 없다는 말인가?
        ―뿌리가 깊다는 말이다.

        ―다른 나라의 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시는 번역되지 않는다. 수출할 뿐이다.

        ―그건 토산품인가? 공산품인가?
        ―나라의 명에 달렸다. 애석하게도.

        ―불가능하다는 말로 들린다.
        ―도서관에서 시인을 발견할 수가 없다.

        ―책은 많이 보지 않는가?
        ―불가능한 책들이다. 상은 많이 받고.

        ―시 자체가 불가능한 시대 아닌가?
        ―생활력이 강한 시들은 살아남는다.

        ―자연을 노래하는 시는?
        ―자연도 인간을 생활한다고 믿는다. 그들은.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
        ―당신과 다르다는 걸로 만족한다.

        ―그래도 뿌리는 같지 않나?
        ―핏줄은 들먹이고 싶지 않다. 대체로 권위적이다.

        ―끝까지 남남이 좋은가?
        ―우주는 혼자다.

        ―왠지 쓸쓸해 보인다.
        ―충분히 비좁다는 뜻이다.

        ―당신 말고 또 누구를 거론하겠는가?
        ―지구와 화성. 아니면 벌레와 친구.

        ―웃음이 많은 시가 좋은가? 울림이 큰 시가 좋은가?
        ―이미 많다.

        ―앞으로의 계획은?
        ―내가 먹은 공기를 말하고 싶다.

        ―식성이 꽤 좋은 것 같다.
        ―당신을 만나기 전까지 토하고 왔다.

        ―지금은 어떤가?
        ―등이나 두드려 달라. 잘 가라고.


[감상]
도대체 시가 무어라고 생각하는가, 라는 질문 앞에서 막막해할 때가 있습니다. 문학이, 시가 우리에게 무엇이길래 이렇게 알 수 없는 갈증을 느끼는 걸까요. 이런 점에서 이 시의 유쾌하고 명징한 문답은  해갈의 느낌을 전해줍니다. 시가 하나의 액자처럼 어떤 틀이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다만, 읽는 이에게 전달되는 메시지에 시의 진정성이 문학이라는 실루엣으로 존재할 뿐입니다. 사실 인터뷰라는 것은 즉자적 상황에 대한 반응입니다. 그러나 이 시는 2000년대가 인터뷰의 한순간이며 8년이라는 세월이 말해주는 답변은 아닐지요.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51 가방, 혹은 여자 - 마경덕 [2] 2005.12.10 1785 217
150 벽 - 유문호 [1] 2006.04.25 1786 219
149 겨울 모스크바 편지 - 김성대 [1] 2011.02.11 1789 128
148 못은 밤에 조금씩 깊어진다 - 김경주 [1] 2006.08.17 1791 196
147 아직은 꽃 피울 때 - 하정임 2004.08.19 1792 197
146 첫사랑 - 진은영 [2] 2001.09.11 1794 190
145 사랑에 대한 짤막한 질문 - 최금진 2001.12.03 1795 207
144 제기동 블루스·1 - 강연호 [2] 2001.04.10 1801 283
143 민들레 - 이윤학 2001.06.13 1803 285
142 선풍기 - 조정 [1] 2005.01.25 1807 178
141 오래전에 잊은 이의 눈썹 - 허수경 [2] 2011.03.15 1813 146
140 뒤란의 봄 - 박후기 [1] 2006.04.01 1820 233
139 오늘 당신을 만난 데자뷰 - 박선경 2006.01.11 1824 255
138 남해 유자를 주무르면 - 김영남 2011.04.06 1824 160
137 저무는 풍경 - 박이화 [1] 2006.05.02 1825 208
136 아침의 시작 - 강 정 [1] 2007.04.17 1825 164
135 식당에 딸린 방 한 칸 - 김중식 [1] 2001.05.02 1826 278
134 별이 빛나는 밤에 - 장만호 2008.11.26 1829 128
» 당신은 - 김언 [1] 2008.05.26 1837 162
132 사랑니 - 고두현 [1] 2001.07.11 1841 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