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래전에 잊은 이의 눈썹 - 허수경

2011.03.15 12:52

윤성택 조회 수:1813 추천:146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허수경 (1987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 《문학동네 시인선》002

          오래전에 잊은 이의 눈썹

        푸른 안개의 품 안에 배나무가 떨고 있다오
        가지에는 아직 땅에 떨어지지 않은 배 하나가 달려 있다오
        
        안개가 걷히면서 바람 부는데
        농익은 배 향기는 은은하게 울려온다오

        종소리를 듣는 것 같아
        배나무의 영혼은 먼 소리처럼 떤다오

        오래전에 잊은 어떤 이의
        눈썹 같은 게 차올라왔다오
        

[감상]
눈을 감고 있으면 안개 낀 어느 정원이 펼쳐집니다. 그곳 농익은 배나무의 배 하나, 조용히 향기로 습기를 머금습니다. 그리고 그 향기는 안개에 섞이고 바람에 섞이겠지요. 향기를 ‘종소리’로 비유하는 기막힌 표현이 ‘은은하게’에 집약됩니다. 그리고 그 종소리의 떨림이 눈썹으로 이어집니다. 그 사람의 속눈썹을 가만히 들여다볼 수 있는 관계였다면 더 아련한 ‘잊음’이겠지요. 섬세하고 부드러운 감각이 배의 싱그러움과 맞물려 詩로서의 새로운 심미를 느끼게 합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51 가방, 혹은 여자 - 마경덕 [2] 2005.12.10 1785 217
150 벽 - 유문호 [1] 2006.04.25 1786 219
149 겨울 모스크바 편지 - 김성대 [1] 2011.02.11 1789 128
148 못은 밤에 조금씩 깊어진다 - 김경주 [1] 2006.08.17 1791 196
147 아직은 꽃 피울 때 - 하정임 2004.08.19 1792 197
146 첫사랑 - 진은영 [2] 2001.09.11 1794 190
145 사랑에 대한 짤막한 질문 - 최금진 2001.12.03 1795 207
144 제기동 블루스·1 - 강연호 [2] 2001.04.10 1801 283
143 민들레 - 이윤학 2001.06.13 1803 285
142 선풍기 - 조정 [1] 2005.01.25 1807 178
» 오래전에 잊은 이의 눈썹 - 허수경 [2] 2011.03.15 1813 146
140 뒤란의 봄 - 박후기 [1] 2006.04.01 1820 233
139 오늘 당신을 만난 데자뷰 - 박선경 2006.01.11 1824 255
138 남해 유자를 주무르면 - 김영남 2011.04.06 1824 160
137 저무는 풍경 - 박이화 [1] 2006.05.02 1825 208
136 아침의 시작 - 강 정 [1] 2007.04.17 1825 164
135 식당에 딸린 방 한 칸 - 김중식 [1] 2001.05.02 1826 278
134 별이 빛나는 밤에 - 장만호 2008.11.26 1829 128
133 당신은 - 김언 [1] 2008.05.26 1837 162
132 사랑니 - 고두현 [1] 2001.07.11 1841 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