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첫사랑 - 하재봉

2001.07.09 12:59

윤성택 조회 수:1892 추천:306

하재봉 / 『안개와 불』/  민음사


        첫사랑
    

        모두머리 한 누이와 아버지를 기다리며
        해인초를 씹었다. 바다 가까운 마을에선
        흰 꽃 눈이 지고
        철들무렵 내 호주머니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지샌 밤을
        셀 수 없이 많이 갖고 있었다.
        별은 내가 꼽을 수 있는 손가락보다 많았다.
        토주 냄새 부벼오는 꺼칠한 턱을 피해
        아침 저녁 주름질 날 없는 바다의 머리맡에
        잔잔히 무릎을 쪼그리고 앉아 있으면
        한 번도 얼굴 보지 못한 어머니 생각이 났다.
        잊어버렸다 생각날 쯤에 바람은 불고
        아버지 키만한 둑위에서
        누이는 수수러지는 치마를 한 손으로 덮어버렸다, 그때
        나는 보았다.
        내륙의 더운 가슴을 지나 강물이
        처음 바다를 만나는 것을



[감상]
첫사랑. 이 말을 발설하게 되면, 누구든 아릿해집니다. 이렇듯 첫사랑은 왼쪽 어깨에 어릴 때 맞았던 불주사 자국처럼 남아 있습니다. 요즘 TV에 종종 보이는 하재봉의 초기시입니다. 그리 길지 않지만 이 시 속에는 화자의 가족사가 명료하게 드러납니다. 누구나 그러하듯 사춘기 시절, 여러 상상을 통해 사랑을 마음 속에 주물鑄物한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아버지와 누이. 자꾸만 "누이는 수수러지는 치마를 한 손으로 덮어버렸다"가 시선에 밟힙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31 왕십리 - 권혁웅 [1] 2001.04.10 1842 292
130 삼십대 - 심보선 [1] 2008.05.27 1842 175
129 책 읽는 여자 - 김희업 2005.09.14 1843 208
128 옥상 - 정병근 [3] 2005.11.03 1847 227
127 오존 주의보 2 - 문정영 [1] 2001.04.07 1848 299
126 뺨 - 함순례 [2] 2006.07.25 1854 225
125 인생 - 박용하 [2] 2003.10.10 1857 159
124 안녕, UFO - 박선경 2006.05.25 1859 267
123 붉은 편지가 도착했다 - 박미라 [2] 2006.08.26 1864 210
122 여자들 - 김유선 2001.04.21 1865 291
121 소나무 - 마경덕 [1] 2005.01.19 1867 201
120 죄책감 - 신기섭 2006.05.29 1871 243
119 우울한 샹송 - 이수익 2001.04.13 1876 324
118 아득한 봄 - 천수호 2006.07.01 1876 223
117 울고 있는 사내 - 장만호 2006.07.31 1879 229
116 정기구독 목록 - 최갑수 [1] 2001.04.10 1880 280
115 책들 - 강해림 2006.07.07 1882 249
114 전망 좋은 방 - 장경복 2001.04.23 1889 325
» 첫사랑 - 하재봉 2001.07.09 1892 306
112 집으로 가는 길 - 김선주 [1] 2004.08.29 1892 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