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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눈물 - 함민복

2004.08.24 19:03

윤성택 조회 수:2187 추천:220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 함민복/ 《창작과비평사》시인선


        달의 눈물        
        
        금호동 산동네의 밤이 깊다
        고단한 하루를 마친 사람들이
        노루들의 잠자리나 되었을 법한
        산속으로 머리를 눕히러 찾아드는 곳
        힘들여 올라왔던 길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몸 더럽히고
        흘러내리는 하수도 물소리
        
        숨찬 산중턱에 살고 있는 나보다
        더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 많아
        아직 잠 못 이룬 사람들 많아
        하수도 물소리
        골목길 따라 흘러내린다
        
        전봇대 굵기만한 도랑을 덮은
        쇠철망 틈새로 들려오는
        하수도 물소리
        누가 때늦은 목욕을 했는지
        제법 소리가 커지기도 하며
        
        산동네의 삶처럼 경사가 져
        썩은내 풍길 새도 없이 흘러내리는
        하수도 물소리
        
        또 비린내가 좀 나면 어떠랴
        그게 사람 살아가는 증표일진대
        이곳 삶의 동맥처럼
        새벽까지 끊기지 않고
        흐르는
        하수도 물소리
        물소리 듣는 것은 즐겁다
        
        쇠철망 앞에 쭈그려 앉아 담배를 물면
        달의 눈물
        하수도 물소리에 가슴이 젖는다
        

[감상]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기 마련입니다. 가파른 산동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오수를 '달의 눈물'로 바꿔내는 직관에서 숨을 잠시 멎습니다. 서정도 서정이겠지만, 추함을 아름다움으로 볼 줄 아는 시인의 인성에 감복하게 되고요. 소시민의 삶 속에서 하나의 개체로 자신을 투사하고 거기에서 깨닫는 과정이, 코 싸매고 지났던 나를 호되게 가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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