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여자들 - 김유선

2001.04.21 12:01

윤성택 조회 수:1865 추천:291

별이라고 했니 운명이라고 했니/ 김유선 / 시와 시학사



여자들

입춘(立春)의 여자가 눈을 뜬다
햇살은 순해졌고 그만으로도 배부른 아침,
지난 겨울은 힘겨웠다
30년만의 폭설은 나무를 무릎까지 파묻고
너와의 관계처럼 다시는
봄이 올 것 같지 않았다
끼니 끊긴 길 위에 다시 눈 쌓여
어느 기다림도 배달되지 않았다
불면의 바람이 빙판길에 넘어지며
실직한 꿈을 다시 얼렸다, 그러나 이 아침
햇살의 눈부심은 누구의 힘인가
어느 손이 창틀의 묵은 우울을 걷어내고
오색의 무지개를 물잔 가득 담아낸다
아, 설레인다
겨울강 건너온 여자가 눈녹은 두 팔을 주욱 펴고
기지개를 켠다
오늘은 어제가 아니어서 더 근사하고
올해는 작년이 아니어서 더 근사하고 싶은 아침,
떠났던 새들도 새소식 하나씩 물고 와
엄동삼동 삭막하던 뜰에 씨를 뿌린다
아, 근사하다
여자들이 제 집 앞 어둠을 쓸어내고
별의 묘목을 심고 있구나


[감상]
지금은 화사한 햇볕이 만국기처럼 펄럭이지만, 지난 겨울은 정말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여성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겨울과 봄, 가장의 실직과 우울에서 희망으로 옮겨가는 이미지가 선명합니다. 청소를 하며 건강한 삶을 꾸릴 수 있는 것, 마지막 "별의 묘목"을 심는 행위가 마음에 와닿습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071 비 오는 날 사당동에서 총알택시를 타다 - 정 겸 2003.11.03 1044 167
1070 수사 밖엔 수사가 있다 - 최치언 2002.05.20 1046 209
1069 드라큘라 - 권혁웅 2004.01.08 1047 187
1068 소각장 근처 - 장성혜 2009.03.18 1047 110
1067 산딸나무 - 고현정 2003.04.28 1048 167
1066 가스통이 사는 동네 - 안성호 2004.01.02 1048 187
1065 술병 빗돌 - 이면우 [1] 2003.03.18 1049 176
1064 꽃 속의 음표 - 배한봉 2003.04.23 1049 187
1063 막돌, 허튼 층 - 이운룡 2004.12.07 1049 202
1062 알쏭달쏭한 소녀백과사전 / 흰벽 - 이기인 [2] 2003.08.29 1052 176
1061 석양리 - 최갑수 2002.05.23 1053 182
1060 마당의 플라타너스가 이순을 맞은 이종욱에게 - 이종욱 2005.03.21 1054 186
1059 거리에서 - 유문호 2002.12.31 1055 178
1058 때늦은 점심 - 이지현 [1] 2003.04.02 1055 158
1057 포도를 임신한 여자 - 장인수 2003.08.12 1055 180
1056 댄스 파티 - 이정주 [1] 2004.06.16 1055 171
1055 밤이면 저승의 문이 열린다 - 김충규 2003.07.05 1056 186
1054 2011신춘문예 당선작 모음 2011.01.04 1056 71
1053 태평양을 다리는 세탁소 - 한혜영 2002.07.12 1058 176
1052 활엽수림 영화관 - 문성해 2003.04.08 1059 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