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 - 손택수

2008.03.04 17:52

윤성택 조회 수:1541 추천:136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 / 손택수 (1998년 『한국일보』로 등단 / 《시평》 2008년 봄호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

        명절 앞날 세탁소에서 양복을 들고 왔다
        양복을 들고 온 아낙의 얼굴엔
        주름이 자글자글하다
        내 양복 주름이 모두
        아낙에게로 옮겨간 것 같다
        범일동 산비탈 골목 끝에 있던 세탁소가 생각난다
        겨울 저녁 세탁, 세탁
        하얀 스팀을 뿜어내며
        세탁물을 얻으러 다니던 사내
        그의 집엔 주름 문이 있었고
        아코디언처럼 문을 접었다 펴면
        타향살이 적막한 노래가 가끔씩 흘러나왔다
        치익 칙 고향역 찾아가는 증기기관차처럼
        하얀 스팀을 뿜어내던 세탁소
        세상의 모든 구불구불한 골목들을
        온몸에 둘둘 감고 있다고 생각했던 집
        세탁소 아낙이 아파트 계단을 내려간다
        계단이 접혔다 펴지며 아련한 소리를 낸다


[감상]
영혼의 간이역 같은 추억에서 회색톤 따뜻함이 <치익 칙> 뿜어지는 시입니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생각을 시인은 물리적 대상에 전달할 수 있다는 신념이 있습니다. 이 시를 읽다보면 <세탁소>와 연관된 모든 상황들이 내면의 풍경으로 자연스럽게 옮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주름>에 응집되면서 <아코디언>, <증기기관차>, <계단> 등으로 잔잔하게 투사됩니다. 연민은 이렇게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에 깃들어 활자마다 아코디언 소리로 구슬프게 들려나오는 것입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071 비 오는 날 사당동에서 총알택시를 타다 - 정 겸 2003.11.03 1044 167
1070 드라큘라 - 권혁웅 2004.01.08 1044 187
1069 수사 밖엔 수사가 있다 - 최치언 2002.05.20 1046 209
1068 소각장 근처 - 장성혜 2009.03.18 1047 110
1067 산딸나무 - 고현정 2003.04.28 1048 167
1066 가스통이 사는 동네 - 안성호 2004.01.02 1048 187
1065 술병 빗돌 - 이면우 [1] 2003.03.18 1049 176
1064 꽃 속의 음표 - 배한봉 2003.04.23 1049 187
1063 막돌, 허튼 층 - 이운룡 2004.12.07 1049 202
1062 알쏭달쏭한 소녀백과사전 / 흰벽 - 이기인 [2] 2003.08.29 1052 176
1061 석양리 - 최갑수 2002.05.23 1053 182
1060 밤이면 저승의 문이 열린다 - 김충규 2003.07.05 1053 186
1059 마당의 플라타너스가 이순을 맞은 이종욱에게 - 이종욱 2005.03.21 1054 186
1058 거리에서 - 유문호 2002.12.31 1055 178
1057 때늦은 점심 - 이지현 [1] 2003.04.02 1055 158
1056 포도를 임신한 여자 - 장인수 2003.08.12 1055 180
1055 댄스 파티 - 이정주 [1] 2004.06.16 1055 171
1054 2011신춘문예 당선작 모음 2011.01.04 1056 71
1053 태평양을 다리는 세탁소 - 한혜영 2002.07.12 1058 176
1052 활엽수림 영화관 - 문성해 2003.04.08 1059 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