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성은 빛나다』/ 최영철 / 문학동네
소주
나는 어느새 이슬처럼 차고 뜨거운 장르에 왔다
소주는 차고 뜨거운 것만 아니라
격정의 시간을 건너온 고요한 이력이 있다
지금 웅덩이 안으로 조금씩 흘러들어가
차고 뜨거운 것을 감싼다
어디 불 같은 바람만으로 되는 것이냐고
함부로 내지른 토악질로 여기까지 오려고
차가운 것을 버리고 뜨거운 것을 버렸다
물방울 하나 남아 속살 환히 비친다
소주는 차고 뜨거운 것만 아니라
불순의 시간을 견딘 폐허 같은 주름이 있다
오래 삭아 쉽게 불그레진 청춘이
남은 저를 다 마셔 달라고 기다린다.
[감상]
언제부터인가 삶의 내력을 소주로 들추어보곤 됩니다. 소주를 좋아합니다. 훈훈한 인정이 있다면야, 병뚜껑처럼 둥근 눈웃음을 새기며 함께합니다. 이 시는 소주에 대한 내면의 표정이 읽혀집니다. 그립거나 슬프거나 우스운 일을 잔 속에 담을 때쯤이면, 마음 속에는 환한 불이 들어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