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길』 / 김은숙 (1998년 『그대에게 가는 길』로 작품활동 시작) / 《시작》시인선(2007)
기습
느닷없다
때론 햇살 때론 바람 혹은 무성한 그늘에도
일순간 덮쳐오는 완강한 기습
가는 길마저 잊었고
머물러 있다는 생각조차 없는데
때론 온 천지에 눈발로 날리고
때론 빗소리로 가슴에 패이며
저 밑 어둠 같은 강물로 굽이친다 너는
한 줌도 안 되는 네 기억은
[감상]
불현듯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상황이나 어떤 연상작용도 아닌, 그야말로 갑자기, 걷잡을 수 없게, 느닷없이 떠올려지는 기억입니다. 이 시의 <기습>은 이렇게 관념적인 시적 상황을 명징한 이미지로 생동감 있게 형상화해냅니다. 그 기억의 대상이 어떤 인물이거나 어떤 사건이어도 상관없습니다. 현실은 계절을 바꿔가며 변해가지만 기습이 이뤄지는 순간, 마치 카메라처럼 하늘에서 지상으로 빠르게 내려와 <한 줌도 안 되는> 실체를 포착합니다. 과거는 이미 거대한 공간이고 망각으로 무너져가는 절벽 같은 것입니다. 시집을 읽다보니, 제목처럼 마음의 손길로 세상을 감각하는 시편들로 치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