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 / 이응준/ 시집 『나무들이 그 숲을 거부했다』(1995, 고려원)
가을날
그전에 날아갔던 새들이
벙어리가 되어 돌아와
길과 거리에 온통 엎드려 누웠다
나는 그 목홍빛으로 낙엽 된
새들의 길을 걷는다
바스락거리며 으스러지는 새들의 흰
날개뼈를 밟으며 희망의 나라로 간다
꽃들도 불과不姙에 시달리고 무지개는
구름 밑에 잠들었던 지난날
모두들 아무것도 아닌 일에 가던 길을
되돌아왔었지만, 어느새 우리가
잠 못 드는 그리움으로 거름 주었던 잡풀들이
울창한 숲이 되었다
지난 해 새들이 내 상한 다리뼈 디디고
멀리 날아갔었다는 슬픈 이야기
아침해 비치는 광장에서 일제히 날아가 버리고
거리에 바람 따라 뒹굴며 쓸쓸했다는 말들도
자꾸 머리만 아프게 했다
[감상]
낙엽이 날개뼈라니요. 이 상상력에 잠시 숨을 고릅니다. 역시 잘된 시는 상식을 배반한 채 의미를 재해석합니다. 가을날, 누가 당신의 갈비뼈를 밟아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