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 정 양/ 《현대문학》 2006년 3월호
이별
길가에 너를 내려놓고
남은 말들이 신호등에 걸려 머뭇거린다
뒷거울 속 네 발길 밑에는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다고 적혀 있다
뒷거울 속은 멀어도 가깝고
뒤에 있는 것들은 가까워도 멀다
돌아보지 말자고 우리는
서로 뒤에 있는데
맘 놓고 돌아보라고
신호등에 걸린 세월도
저만큼씩 뒤에 있구나
멀리 보이는 슬픔보다
참아버린 말들이 가깝다
가까워도 멀리 보이는
뒷거울 속 네 뒷모습
[감상]
운전하면서 수없이 보았던 백미러, 그곳에 적혀 있는 글씨가 이제야 생각납니다. <멀리 보이는 슬픔>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인 현실에서 비춰지는 정서가 잔잔하게 와닿습니다. 이 시에서의 <거울>은 대상을 비춰내는 역할뿐만 아니라, 관조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현실을 투영해냅니다.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싶을, 그 거리에 우리의 뒷모습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