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버려진 - 최치언

2011.03.11 10:49

윤성택 조회 수:1355 추천:130


《어떤 선물은 피를 요구한다》/  최치언 (1999년 『동아일보』로 등단) / 《문학과지성 시인선》382

          버려진

        꽃은 그녀와 상관없이 버려진다
        담장아래에도 버려지고
        사내가 다녀간 포장마차에도 버려진다
        그녀는 약국으로 들어가고
        철물점으로 나온다 상관없이,
        꽃은 하루하루 피었다 버려진다
        3층에서 떨어진 사내가 병원에 실려간다
        2층에서 바라본 그녀도 병원에 실려간다
        1층에서 문병을 온다
        고양이가 물고 온 편지 속에
        이곳 생활은 견딜 만하다고 이만 총총……
        구겨지고 버려진다
        꽃집에 없는 꽃들이 버려진다
        꽃이 아닌 꽃들이 버려진다
        1층을 오르던 사람들이
        2층을 오르는 사람들을
        3층에서 밀어버린다
        그녀가 가슴을 조이고
        사내가 외발을 짚고 고개를 숙인다
        이 도시에서
        철물점으로 들어가면 약국으로 나올 수 없다
        약국으로 들어가면 철물점으로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상관없이,
        매번,
        그대와 나는 버려진다
        

[감상]
졸업이며 입학이며 지금 한창 꽃이 버려질 계절입니다. 꽃이 피고 지는 것도 하나의 生일 터인데 가장 화려할 때 꽃은 누군가의 손에 들려졌다가 쓸쓸히 버려집니다. 그러나 꽃이 기념하는 것은 즐거운 일도 있지만 불의의 사고나 병중인 사람도 해당됩니다. 그래서 ‘꽃집에 없는 꽃들이 버려’지는 건 우리 주위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여자가 사내를 버리고, 버린 사내 때문에 그녀도 버림받는 현실은, 사람이 사람이 버리는 각박한 우리네 현실인 것입니다. 이 시에서 확정적으로 (순서가 틀려서는 안 되는) 약국으로 들어가야 철물점으로 나온다는 진실은, 유행이나 외모 쫓거나 물질을 지향하는 왜곡된 대중들의 심리 표식입니다. 살아가면서 한 번이라도 버려진 적 있다면 이 시가 여기에 있는 이유입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191 문을 닫다 - 문성해 2007.08.28 23689 98
1190 위험한 그림 - 이은채 [1] 2005.02.25 15698 191
1189 절정 - 함성호 2011.04.25 4059 157
1188 벚꽃 나무 주소 - 박해람 2015.05.11 3643 0
1187 행복 - 이대흠 [2] 2011.03.18 3635 182
1186 가을날 - 이응준 2002.09.26 3601 259
1185 봄비 - 서영처 2006.01.14 3275 276
1184 추억 - 신기섭 [6] 2005.12.06 3154 232
1183 정거장에서의 충고 - 기형도 [2] 2001.04.03 3113 294
1182 꽃피는 아버지 - 박종명 [4] 2001.04.03 3084 281
1181 해바라기 - 조은영 [1] 2005.11.01 3023 251
1180 사랑은 - 이승희 2006.02.21 2977 250
1179 별 - 김완하 2002.08.12 2923 249
1178 가을산 - 안도현 2001.09.27 2815 286
1177 고백 - 정병근 [1] 2005.08.17 2711 250
1176 싹 - 김지혜 2005.12.27 2666 266
1175 그물을 깁는 노인 - 김혜경 [1] 2001.04.09 2631 306
1174 유리꽃 - 이인철 2006.04.03 2589 253
1173 이별 - 정양 2006.03.02 2542 287
1172 우체통 - 이진명 2001.04.11 2538 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