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쓸쓸한 날에 - 강윤후

2001.08.23 12:27

윤성택 조회 수:1651 추천:211

『다시 쓸쓸한 날에』 / 강윤후 / 문학과지성사


        쓸쓸한 날에

        가끔씩 그대에게 내 안부를 전하고 싶다
        그대 떠난 뒤에도 멀쩡하게 살아서 부지런히
        세상의 식량을 축내고 더없이 즐겁다는 표정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뻔뻔하게 들키지 않을
        거짓말을 꾸미고 어쩌다 술에 취하면
        당당하게 허풍떠는 그 허풍만큼
        시시껄렁한 내 나날들 가끔씩
        그래, 아주 가끔씩은 그대에게 안부를 전하고 싶다
        여전히 의심이 많아서 안녕하고
        잠들어야 겨우 솔직해지는 치사함 바보같이
        넝마같이 구질구질한 내 기다림
        그대에게 알려 그대의 행복을 치장하고 싶다
        철새만 약속을 지키는 어수선한 세월 조금도
        슬프지 않게 살면서 한치의 미안함 없이
        아무 여자에게나 헛된 다짐을 늘어 놓지만
        힘주어 쓴 글씨가 연필심을 부러뜨리듯 아직도
        아편쟁이처럼 그대 기억 모으다 나는 불쑥
        헛발을 디디고 부질없이
        바람에 기대어 귀를 연다, 어쩌면 그대
        보이지 않는 어디 먼데서 가끔씩 내게
        안부를 타전하는 것 같기에

[감상]
"가끔씩 그대에게 내 안부를 전하고 싶다" 이 말로 인하여 詩가 이어져 나옵니다. 헤어져서 이제는 남남으로 살고 있을 사람. 그 사람 또한 가슴에 어떤 문양을 지닌 채 살아가고 있을까. 영화 "러브레터"에서처럼 "오겡끼데쓰까?"라고 소리치고 싶은 심정. 시 곳곳에서 묻어납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대/ 보이지 않는 어디 먼데서 가끔씩 내게/ 안부를 타전하는 것 같기에"라는 메아리 같은 결미부분에 이르러도 잔잔한 울림이 넘어옵니다. 그대, 잘 지내시는지.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971 꽃기름주유소 - 고경숙 2007.02.23 1660 168
970 눈길, 늪 - 이갑노 2006.03.29 1659 248
969 곶감 - 문신 2006.04.12 1658 212
968 가문동 편지 - 정군칠 2006.02.02 1657 229
967 종이호랑이 - 박지웅 2006.04.10 1656 226
966 네 사소한 이름을 부르고 싶다 - 박소원 [1] 2005.01.18 1656 215
965 가물거리는 그 흰빛 - 이근일 2006.06.05 1653 261
» 쓸쓸한 날에 - 강윤후 2001.08.23 1651 211
963 희망은 카프카의 K처럼 - 장석주 2001.06.28 1649 325
962 맡겨둔 것이 많다 - 정진규 2004.03.03 1648 223
961 나방 - 송기흥 2005.08.25 1645 205
960 안녕, 치킨 - 이명윤 [2] 2008.02.04 1643 130
959 예감 - 류인서 2005.03.25 1643 205
958 나무 - 안도현 [1] 2003.03.15 1643 163
957 따뜻한 슬픔 - 홍성란 2001.11.27 1641 190
956 교통사고 - 김기택 [4] 2005.06.14 1640 221
955 객관적인 달 - 박일만 [3] 2005.10.25 1639 222
954 연애에 대하여 - 이성복 2002.02.01 1639 184
953 사십대 - 고정희 2011.02.22 1638 125
952 아내의 재봉틀 - 김신용 [1] 2006.05.05 1636 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