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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감 - 문신

2006.04.12 17:14

윤성택 조회 수:1658 추천:212

<곶감> / 문신/ 《신생》2005년 겨울호

  곶감

  무너진 돌담 너머로 꽃상여 지나가네 모든 소리들이 돌담 위에
걸터앉아 꽃상여를 밀어 보내네

  할머니들 평상에 앉아 감을 깎네  세월의 껍질이 끊어지지 않고
둥글게 말려지네  할머니들 말려올라간 눈꺼풀에 감물이 들어 저
승길 캄캄하네  무명실로 뒷꼭지를 바짝 죈 둥근 감이 처마 끝에
내걸리네 꽃상여 지전(紙錢)들이 거룩하게 나부끼네 거룩한 삶이
마을을 벗어나 알 수 없는 곳으로 가네

  할머니들,
  먼 곳을 바라보네 뒷꼭지 당기는 세월이 멀겋게 말라가네 수의를
입은 듯  세월은 남은 호흡을 토해내고 할머니들  그렇게 가을볕에
말라가네  할머니들 감물 든 손을 쥐락펴락 하는 사이 눈꺼풀 속으
로 꽃상여 들어오네

  감이 육탈하는 순간이네


[감상]
곶감이 되어가는 경로와 상여의 묘사가 잘 어우러진 시입니다. 할머니들이 손질하는 곶감은 또 하나의 의식과도 같아서, <무명실로 뒷꼭지를 바짝 죈 둥근 감>이 <꽃상여 지전(紙錢)>이 되기도 합니다. 또한 <육탈>이란 살이 썩어 뼈만 남는 것을 의미하는데, 시인의 직관은 껍질을 벗겨 꿰어 말라가는 곶감의 과정에 주목한 것 같습니다. 여생의 손길을 거친 곶감이 세월에 꾸덕꾸덕 말라가는 것, 이것이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인가 싶어 <꽃상여>의 의미가 더욱 애잔하게 다가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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