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 신경림 / 『내일을 여는 작가』( 2002년 봄)
봄날
새벽 안개에 떠밀려 봄바람에 취해서
갈 곳도 없이 버스를 타고 가다가
불현듯 내리니 이곳은 소읍, 짙은 복사꽃 내음.
언제 한 번 살았던 곳일까,
눈에 익은 골목, 소음들도 낯설지 않고.
무엇이었을까, 내가 찾아 헤매던 것이.
낯익은 얼굴들은 내가 불러도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복사꽃 내음 짙은 이곳은 소읍,
먼 나라에서 온 외톨이가 되어
거리를 휘청대다가
봄 햇살에 취해서 새싹 향기에 들떠서
다시 버스에 올라. 잊어버리고,
내가 무엇을 찾아 헤맸는가를.
쥐어보면 빈 손, 잊어버리고,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서 내릴지도.
[감상]
가끔 내가 왜 태어났을까에 골몰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라는 존재에 대한 전생이 궁금해졌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기독교, UFO, 자연과학, 철학, 불교라는 사다리를 타고 그 질문에 닿고자 했습니다. 이 시는 그런 삶의 방향성에 관해 진솔한 내면을 보여줍니다. 어디서 한 번 보았을 것 같은 인연들.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 수많은 원인들로부터 나는 어떤 결과로 맺어지는 것일까. 사다리가 짧은 내 사유는 지금 보수가 불가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