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사이버신춘문예 작품집/ 최승철/ 유니프레스
편지에게 쓴다
李君, 나는 혼자라네 거기 거울 앞의 헤어드라이는
여전히 냉정하네 면봉 위의 먼지들은 날카롭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입고 나갈 와이셔츠를
빳빳이 세울 다리미와 분무기, 어디에도 내 마음이
안주할 데는 없네 태풍은 북상중이고 매미는
한 여름의 태양처럼 울고 있네 숙취로
늦게 일어난 아침 눅눅함이 수건에서 풍겨겨 나오네
습기 때문이겠지 어젯밤 술에 취해 고장난
탁상시계를 고치려고 드라이버로 몇몇
나사를 풀었는데 다시 조립할 수가 없었네
李君, 내 방은 한낮에도 형광등 불빛이 필요하다네
이렇게 출근하지 않은 아침 아무에게나 전화해서
사랑한다는 그 따뜻한 말 한마디 들려주고 싶었다네
이불을 걷을 때 뭉개져 나오던 귀뚜라미의 다리에
내 눈은 왈칵 살가움을 느꼈네 죽고 싶다거나
외롭다는 말은 구겨지기 쉬운 담뱃갑의
모서리처럼 순간적이었네 사무일지를 쓰며
이 익숙한 단어들의 문자가 맞는지 확인해 본다네
가끔 세상과의 관계가 참으로 낯설다네
李君, 태풍은 위액을 휘감고 북상 중이라네
[감상]
반지하, 그리고 태풍, 그리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세상. 잔잔하게 그려진 이 시는 시의 공간으로 나를 훌쩍 데리고 갑니다. 소시민의 삶을 잘 투영시킨 점이 좋습니다.